반도체 산업은 적지 않은 암환자 유발하는 직업병 다발성 산업?

by 에스떼반 posted Sep 2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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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6일, 스물 세 살 여성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택시기사인 아버지가 그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택시 뒷좌석에서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고통의 끝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후 불과 2년 만에 병마에 쓰러진 황유미 씨의 죽음에는 많은 물음표가 달려 있었다.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탄생이었다. 그 안에는 당시 33살의 젊은 산업의학 전문의가 끼어 있었다.

3년이 흐른 2010년 6월, 이 전문의는 미국 공중보건학회(AHPA)의 '2010 산업안건보건상(Occupation Health & Safety Awards)' 국제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공유정옥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와 반올림은 황 씨의 죽음 이후 비슷한 질환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 15명을 더 찾아내 산업재해인정을 신청했고, 100여 명에 가까운 제보를 받고 있는 상태다. 학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반도체 산업의 노동자가 노출되는 작업환경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활동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의사가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게 된 일을 보도한 국내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는 지난 3년 동안 반올림이 걸어왔던 궤적과 비슷하다. 국내 언론의 최대 광고주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에 맞서 수십 명에 불과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중요성을 인식한 이들은 한국 밖에 있었던 셈이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편집자>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공유정옥 전문의 ⓒ프레시안(손문상)

"혼자서 한 일이 아닌데…'진짜 수상자'는 반올림"

프레시안: 이번에 수상한 상에 대해 설명해 달라.

공유정옥: 미국 공중보건학회에서 주는 상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학회 내 26개 분과가 있고, 분과마다 몇 개의 상을 주는데 이번에 받은 상은 산업보건분과에서 수여하는 국제부문 산업안전보건상이다. 다른 4개의 상은 모두 미국인이 받았다. 산업보건학의 대모라 일컫는 앨리스 해밀턴의 이름을 딴 상도 있어서 더 좋아 보이더라(웃음).

프레시안: 공인된 학회에서 주는 만큼 상에 실린 권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공유정옥: 권위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뜬금없이 상을 준다고 했으면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른다. 미국 학자들이 모여서 한국 사람한테 상 준다고 하면 좀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역대 수상자를 살펴보니 주로 남미나 아시아 쪽에서 나왔다. 수상 배경을 좀 알아보니 분과 회원으로 활동하는 산업보건 전문가 몇 명이 반올림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의 싸움이 중요하다며 노동·인권운동 쪽을 벗어나 좀 더 알릴 필요가 있다고 해서 추천했던 것 같다.

프레시안: 언제 연락을 받았나?

공유정옥: 수상 후보군에 올랐다고 알려온 때가 올해 초였고, 수상이 확정됐다는 통보가 온 것은 6월쯤이었다. 솔직히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딱히 기쁘거나 좋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처음엔 내가 아니라 반올림 이름으로 선정해달라고 했지만 단체는 수상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 내가 혼자한 일도 아닌데 좀 이상하게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도 같이 고생했는데 본인 공으로 챙긴다고 할까봐(웃음).

강남 8학군 소녀, 상계동 철거민을 만나다

프레시안: 의사 면허를 가진 활동가는 한국에서 흔치 않은데, 왜 하필 의사가 됐나?


ⓒ프레시안(손문상)
공유정옥: 중학교 때 의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독립을 하고 싶어서였다. 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그랬는지 약간 청교도적인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여성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끔 하는 직업 중에 의사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이기도 하고.

프레시안: : 모범적으로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공유정옥: 말썽을 부리진 않았다. 겉으로는(웃음).

프레시안: 그 시절에 노동 이슈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나?

공유정옥: 전혀 몰랐다. 사립 중학교·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거기엔 전교조 선생님도 몇 없어서 학교 밖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몇몇 선생님이 조금씩 이야기 해주긴 했지만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그 당시가 1980년대 후반이었으니 알 법도 했을텐데…. 창피한 얘기지만, 강남 8학군에서 편안한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다.

프레시안: 대학 시절 무료 진료 활동을 했다. 그게 지금하는 일의 계기가 됐나.

공유정옥: 처음 입학하면 소모임에 들기 마련인데, 무료 진료 활동이라니까 그저 좋은 일이려니 했다. 그런데 첫 모임부터 선배들이 '우린 의료 봉사가 아니라 도시 빈민을 지원하는 운동을 하러 가는 거다'라고 하더라(웃음).

당시 상계동 철거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부자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왔던 삶이 저들보다는 훨씬 편했고, 그런 편한 삶이 소수의 것이었다는 생각. 당시 만났던 한 할머니를 보면서 '저 할머니는 나와 무슨 차이가 있어서 저 연세에 폐지를 줍고, 13만 원 정도 했던 생활보조금으로 만날 라면만 끓여먹는 삶을 사는가', '저 분은 자기 집도 없는데, 살아오면서 제대로 한 것도 없는 난 내 방이 있고…' 이런 걸 느끼게 된 거다.

의약분업 사태가 준 충격…"겉보기와 다른 의사 집단"

프레시안: 진보적인 활동을 했던 의대생들도 졸업하면 대부분 평범한 의사로 살아간다. 혼자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나.

공유정옥: 더 행복한 길을 택한 거라고 생각했다. 산업의학을 하는 게 다른 걸 전공하는 것보다 많은 걸 놓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인턴 기간 때 외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은 몇 달 해 봤다. 수술이 너무 좋아서. 그것 말고는 망설인 기억이 없다.

프레시안: 의대를 다니려면 돈도 만만찮게 드는데 '본전 생각'은 안 났나.

공유정옥: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학자금을 지원해줬다. 마지막 학기에만 등록금을 내서 큰 부담은 없었다. 학교 다닐 때도 용돈을 마련하려 과외 정도만 했다. 집이 많이 어려웠으면 다시 일으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아마 애초에 이런 일 하라고 정해졌던 게 아닐까.

졸업을 앞두고 인턴을 어느 병원에서 할지 고민했다. 학연이나 전근대적인 인간관계가 가장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소중한 20대를 그런 곳에서 치이면서 보내기 싫었다. 그래서 학교병원이 아니라 원자력 병원으로 갔다.

거기서 의약분업 사태를 겪었다. 그때 '일반적인 의사'라는 사람들이 사실은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다는 걸 알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의사 사회의 닫힌 모습을 많이 봤다.


ⓒ프레시안(손문상)

"기형적인 의사 문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섞이기 싫었다"

프레시안: 산업의학 전문의를 선택한 과정이 궁금하다.

공유정옥: 음…가랑비에 옷 젖듯? 기술자가 장인이 되려면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겪으며 지켜본 의사들은 이런 깨우침과 한참 거리가 있었다. 최소한의 인문사회과학 소양도 없는, 그저 돈밖에 모르는 집단 같았다.

나도 그 집단의 일원이었지만 되도록이면 그런 이들과 섞여 살고 싶지 않았다. 임상하면서 환자를 보고 싶단 생각은 한 적이 있지만 그 덫에서 나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현장에서 활동하던 선배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이유도 20대라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를 그런 집단에서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4시간 병원 안에 차단된 채 자신들만의 이상한 조직문화와 인간관계, 다른 직종에 대한 권위의식에 똘똘 뭉쳐 있는데 어떻게 버티겠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떤 일을 해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보다 나를 지키려면 그런 의사들과는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우리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업의학을 선택했다. 지금도 가끔씩 임상하면서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의사들을 보면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근골격계 질환, 철도 노동자 공황장애…싸움은 진행형"

프레시안: 반올림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어떤 활동을 했었나?


ⓒ프레시안(손문상)
공유정옥: 금속 노동자 중심으로 일어났던 근골격계 싸움이 있었다.

근골격계라는 건 내장이나 피부 등을 제외한 모든 조직을 말하는데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직무, 반복적이고 고정적인 업무, 오래 앉아있는 사무직까지 모두 걸릴 수 있다. 그런 질환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서 진찰하고, 수십 명씩 산재를 신청해 치료를 요구했다.

회사에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인원을 충원하고 작업 속도를 늦추라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 다음에 큰 사건이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자들이었다.

정말 어려웠다. 유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싸움 자체가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을 일으킨 노동자들이 자살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에 분위기도 무거웠다. 노동조합의 상황도 어려웠고 공기업이다 보니 사측의 태도도 훨씬 더 경직돼 있었다. 환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산재는 인정 안 되고.

고통스러웠고, 오래 끌었다. 지금도 당시 만났던 이들 생각이 난다. 당시 환자 모임을 기록한 다이어리를 보고 최근 근황을 물어보면 대부분 건강을 되찾지 못하거나 회사에서 한직에 밀려나 있더라. 7~8년이 지난 일인데도 그렇게 지낸다. 무거운 숙제다.

젊은 노동자의 죽음, 반올림의 탄생

프레시안: 그 뒤에 반올림에 들어 갔다.

공유정옥: 2007년 11월 20일에 반올림 조인식을 가졌다.

프레시안: 처음에 어떻게 제안을 받았나?

공유정옥: 이 사건을 처음 알았던 건 2007년 초다. 당시 황유미 씨가 숨지면서 가족들과 산재 신청을 준비하던 (반올림의) 장안석 활동가가 조언을 구해왔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 직업병은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하기에 '직업병일 수도 있겠다'라고 했다. 당시 중론은 암이 불과 2년 만에 생길 리가 없다는 거였다. 나도 잘 몰라서 그렇게만 대답하고 잊고 있었는데 나중에 같이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와서 일단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게 좋겠다고 하고 넘어갔다. 몇 달 지나서 9월경 수원에서 다산인권센터 등을 중심으로 반올림이 꾸려지면서 다시 참여 제안이 왔다.

프레시안: 다른 전문가들이 아니라고 하는데, 직업병일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

공유정옥: 전부에게 물어본 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도 나중에 보니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던 이들이 몇몇 있었다. 암은 보통 10년, 길게는 20~30년 지나야 생긴다는 게 지금까지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다. 그래서 발병 기간이 너무 짧으면 그건 직업병이 아닌 다른 원인에서 오지 않겠냐는 거다.

일견 타당한 얘기다. 그런데 거꾸로 '1~2년 만에 암이 생길 수가 없는가'라고 물으면, 그건 모르는 일이다. 통계의 함정이다. 보통 사람의 기대 수명이 77세면 다 그렇게 사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여지가 남아 있어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그 뒤에 더 많은 피해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 젊은 노동자들이었으니까.

"백혈병이 우연? IBM, 삼성. 왜 하필 반도체 공장에서만…"

프레시안: 반올림이 몇 차례에 걸쳐 공개한 산재신청 내용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이 젊은 나이고 입사 당시 특별한 건강상 문제가 없었다. 희귀병과 관련된 특이한 가족력도 없었고 입사 이후 사 측이 실시한 건강검진에서도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삼성 측은 수만 명이 근무하는 공장에서 몇 명이 발병했다고 직업병과 관련지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들이 삼성의 주장대로 우연의 산물일 수 있나?

공유정옥: 당연히 우연일 가능성을 '제로(0)'라고 하진 않는다. 제로에 수렴할 뿐이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 당시 같은 라인에서 같은 업무를 맡았던 故 황유미·이숙영씨가 함께 발병한 사례를 우연이라고 치자. 그 공장에서 라인은 각기 달랐지만 엔지니어 팀에 속한 4명 중 3명이 희귀병이 걸린 것도 우연이라고 치자. 그들과 똑같은 일을 했던 미국 IBM 공장에서도 연구원 12명 중 10명이 암에 걸린 것도 우연이라고 치자. 그 중에 4명은 똑같이 뇌종양이 생겼다는 것까지.

그럼 결론을 '참 희한하게도 반도체 공장에서는 이런 우연한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구나'라고 내고 끝내야 하나? 우연일 수도 있는데 그런 우연한 사건들이 겹치기 시작한다면 우연이 아니라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그걸 규명해야 하는 이들이 예컨대 배운 사람들, 정부에서 세금으로 월급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제대로 풀리지 않아 갑갑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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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창의력의 베이스캠프

비록 삼성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관련산업에서 일하는 연구진 조차도
심지어 한팀에서 일하던 거의 모두가 젊은 나이에 백혈병이나 종양등에 걸리고 있으니
이는 결코 삼성에서 말하듯이 우연히 치부하고 우물쩡 돈으로 결코 입을 막고 넘어갈일이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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