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노선

by gmland posted May 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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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노선


아래 글은 박하향기님 등의 끈질긴 요청에 따라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첫째, 진보신당이 민노당에서 분리되지 않았는데 왜 분리되었다고 말하느냐, 둘째, 진보신당이 친북과 결별햇다는 근거를 대라, 셋째, 진보신당이 왜 민노당에서 분리되었는지, 그 근거를 대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사회단체], [정치정당], [비판] 부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ㅡ 아래는 한국위키백과사전에서 가져온 것임 ㅡ


* 친북좌파, 주체사상파

이 글의 중립성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어 논의 중입니다. 주관적인 내용이나 감정적인 표현은 없는지, 고려할 가치가 있는 여러 관점이 편견 없이 공정하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해 주세요.


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 줄여서 주사파)는 남한에서 민족 해방 계열의 하나로, 북조선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그것에 따른 정치운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전에는 이들을 특별히 가리키는 말이 없었으나 1994년 7월 18일 서강대학교 박홍 총장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대학 총장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학에 주사파가 깊이 침투해 있다고 발언한 후 주사파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1]

21세기에도 주체사상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으나, 박홍의 말처럼 대한민국 내에 주체사상 지지자가 많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


[편집] 주사파의 유래

1980년대 이전 남한의 사회 운동에서 소련공산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념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이승만 정권의 반공 탄압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에서 소련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의 대부분은 죽거나 북조선으로 탈출하였다. 남한 정부는 북조선에 대해 정보를 통제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어릴 때부터 북조선에 대한 반공 교육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일부 사회 운동 세력 중에는 이러한 남한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해 역으로 북조선이 사실은 1970년대 당시의 남한보다는 살기 좋은 곳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는 세력이 있었다.

이러한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북한의 주체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시기는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반이었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계기는 1985년 발표된 김영환의 강철서신이었다. 여기에서 김영환은 자신을 '한 노동운동가'로 소개하면서 주체사상을 학생 운동가들에게 알기쉽게 풀어 설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회 운동 세력 중에서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늘어났다. 이후 1992년에서 1994년 대학 교수들과 성직자들 중 일부가 대학가 내에 주체사상파가 존재한다는 폭로함으로서[2][3][4] 그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북조선이 붕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군사정권 및 권위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의미에서 북한을 대안으로 생각,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세력이 1990년대 중반까지 증가하였지만, 북조선의 실상(경제침체로 인한 꽃제비, 탈북자 문제, 통제체제, 민주주의의 부재 등)이 남한에 알려지고 IMF 위기 이후 학생들의 정치 참여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2008년 현재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주체사상 지지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5]


[편집] 활동

[편집] 학생 운동
초기 주사파는 남로당, 해외유학생 등과는 다르게 자생적으로 성장하였으며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주사파에 대한 북한의 공작이 진행되면서 직접적인 연계를 갖게 된다.[6] 강철서신의 유행으로 1980년대 말 절정을 이루었지만,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세력이 많이 감소하였다.

한총련 역시 1993년 발족할 당시에는 학생 운동 세력 중에서 영향력이 엄청났으며, 주체사상이 중심적인 이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들이 남한 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되고, 전체적인 학생운동의 퇴조와 함께 학생 운동 내에서 주체사상의 위상 역시 1980년대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한편 1980년대에 한총련의 전신인 전대협이나 기타 단체에서 '주사파'로 낙인찍힌 채로 학생운동을 하던 학생 운동가들 중 많은 숫자가 현재 민주노동당과 통합민주당에서 활동하고 있고 일부는 '전향'을 선언하고 한나라당에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다.


[편집] 사회단체

군부독재 시대에 주사파는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일부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일부는 제5공화국 붕괴 이후 제도권 정당으로의 진출을 시도하였다. 이 때문에 일부 우파 반공주의자들 중에는 민주화 운동과 주사파, 빨갱이를 동일한 집단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군부독재 시대 사회활동을 하던 많은 민주화 활동가들은 진보연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의 단체로 활동하거나, 자유주의, 진보주의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2008년 현재 주체사상을 실제로 표방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편 당시 운동 세력중 일부는 우파로 전향하여 2002년 남한의 뉴라이트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편집] 정치정당

민주노동당의 지도층의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민족 해방(자주파) 세력이 주사파라는 주장이 있으며, 진보신당에서는 이들이 종북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자주파 세력이 북한에 대해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 별도로 이들이 실제로 주체사상을 지지한다는 근거는 현재까지 없다. 한 예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서 민주노동당은 북조선 당국의 사과를 요구하였다.[7]

현재는 주사파라는 단어는 주체사상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북조선에 친화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 세력을 폄하하거나, 북조선에 반대하는 좌파 세력까지도 한통속으로 집어넣는 용어처럼 사용되어 사실상 빨갱이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편집] 비판

주사파 중, 1990년 독일 통일과 1992년 구소련 붕괴 이후 공산권 몰락으로 회의감을 품게 된 일파는 전향을 선언하여 뉴라이트가 되었다.[8][6] 현재 이들은 뉴라이트, 시대정신, 자유주의 연대,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 인권 등의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대한민국의 뉴라이트 참조)

뉴라이트가 우파적인 방향으로의 비판이라면, 좌파적인 비판은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때 본격화되었다. 분당 사태 때, 심상정, 노회찬 등의 인사들은 기존 민주노동당을 '종북주의'로 규정하고, 민주노동당을 탈당 진보신당을 창당하였다.

보수 정치권 및 보수 언론에서는 주체사상과 무관하더라도 좌파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 단체 '주사파'라고 많이 부른다. 1998년에는 보수 정치권에 의해 최장집 등이 주사파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특정 세력을 '주사파'로 몰아가는 모습은 적어졌다. 대신 좌파 세력에 대해 친북좌파라는 비하적 의미의 용어로 격하시켜 부르는 일은 여전히 많다. 이는 주사파 출신자 뿐만 아니라, 주사파가 아니더라도 보수주의자들에게 협력하지 않는 대상에게까지 확대하여 사용하고 있다.[9]


[편집] 기타

소수 운동권이 존재하는 학교가 있으며 또한 실제 운동권이 존재하지 않는 대학가에서도 일부 주체사상파 학생운동권의 흔적이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일부 대학가에서는 1주일에 4일만 수업을 신청(주 4일)하거나, 술주정이 심한 학생들을 장난으로 '주사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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