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정희성

by 으니 posted Nov 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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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 아메리카 원주민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

- 정희성, 2005.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정희성 시인이다. 현실을 일깨우면서도 가슴이 젖어있는 시를 썼던 그 시인이, 투박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했던 그 시인이, 11월을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니 이런 시가 나왔다. 1978년과 2005년의 간극은 이런것인가. 대놓고 언급한 "사랑", 케케묵은 그 단어 "추억", 게다가 "그대".. 하지만, 오늘같이 하늘 어두운 날, 소리내어 읽어보면, 이 시가 가진 진실의 힘이 내 안에서 툭툭 발길질을 해대는 것이 느껴진다. 현실참여의 시로 유명했던 그가 사랑을 노래했다해서 현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랑이나 추억이니 그대를 늘어놓았다해서 진실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진실없인 사랑없고, 그것은 신기루도 아닐테니까. 시간을 외면할 일이 아니라, "우두커니 혼자 있도록" 해 줄 일이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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