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11시 30분

by 으니 posted Oct 0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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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곳이 너무 많은 하루였고, 이미 한군데는 들러서 출발한 길이었다. 이동시간까지 계산하여 빠듯하게 끼워넣은 일정 탓에 밥 먹을 시간 같은건 생각할 수 없고, 잠도 부족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멀리 있었고, 머리속에선 오늘 잊지 말고 챙겨야 할 것들과 전화걸어 확인할 일들 그외에 조잡한 것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게다가 길을 잘못들었고, 두리번두리번 한 끝에 제대로 된 길에 올라타려고 유턴을 하기로 했던 참이었다.

따끔한 눈을 달래주고 싶어서, 잠시 눈을 감고 있기로 했다.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댔다. 여긴 유턴라인이니까 신호를 한번쯤은 놓쳐도 상관없겠지, 하면서 눈을 스르르 감는데,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눈을 번쩍 떴다.

수송기였다. 프롭펠러 두개를 달고 있었다. 핫, 여긴 성남비행장 옆이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창문을 아예 내리고 고개를 쭉 빼서 수송기의 배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검은 그림자는 내 머리위를 지나 도로에 정확하게 CN-135의 모양을 그리면서 스르르 움직인다.

오랫만이다. 이렇게 비행기의 배를 본 건.




- 어릴 적에 화곡동에서 살았다. 종종 아빠의 오토바이 앞 자리에 타고 김포공항쪽으로 가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한참이나 함께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 영종도에 가다보면, 고속도로의 왼쪽으로 아파트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래도 꽤 오래전에 지은거라 성냥갑같이들 비슷한 모양들을 하고 있다. 이름들도 다들 비슷하구.

- 고 2 때다. SU-37 이 온다길래 등교하자마자 조퇴하고 아빠랑 에어쇼 보러 갔다. 그 후엔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아빠가 그저께 문자보냈다. 18일부터 에어쇼래.

- 이래저래 비행기도 많이 탔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젠 데면데면할만도 한데, 나는 그래도 항상 비행기가 아주 낮게 내 머리위로 나는걸 보면 가슴이 설렌다. 그립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 떠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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