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세계의 음악계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필립스사에서 모차르트의 전 작품을 180장의 CD로 담아서 발매한 것이었는데 세계 음반사상 전무후무한 기념비적인 일대 사건이었다.
이 모차르트 에디션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세트가 들어왔는데 당시 필자가 단골로 거래하던 부산 광복동에 있던 신악기 레코드사의 주인 할머니로부터 이 에디션을 구입을 하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당시엔 수입 음반이 S-Top 기준으로 장당 13,000~14,000원 정도였는데 10,000원 정도로 싸게 팔겠다는 것이다.
통상 1달 음반구입비로 30만원 정도를 지출했는데 180만원이면 6개월치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이 할머니는 역사적인 명반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걸어다니는 사전이었고 부산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풍부한 음악적 지식을 갖춘 멋쟁이 할머니였다.
당시 필자는 모차르트에 푹 빠져 있었는데 이 음반의 구입 여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음반을 사고 나면 몇 달을 굶어야 하는데...
카드로 팍 긁어버려? 아님 말어?
얼마 전 오디오 바꿈질로 몫돈이 들어가서 마누라한테 바가지를 긁혔는데 으아아아 무서버...
아아~ 주머니가 앏은 월급쟁이의 설움이여~
결국 이 에디션을 구입하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에디션은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맞아 새로 녹음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필립스에서 발매했던 음반을 하나로 묶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과 중복되는 것도 다수 있어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그 후 음반 숍을 들렀다가 이 에디션이 낱개(낱개라고는 하지만 Vol. 1, 2... 식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한 묶음에 족히 7~8장은 되었다)로 판매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서둘러 몇 질을 들여 놓았다.
그 중 현악4중주 전집은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이탈리아노 4중주단의 연주였다.
항상 그렇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케이스를 개봉하여 CDP에 넣고 Play 버튼을 눌렀다.
온 방안을 휘감는 음향의 소용돌이... 감동의 물결...
이 때 마누라로부터 태클이 들어왔다.
"여보~ 잠 좀 잡시다."
문득 마누라한테 미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오디오 바꿈질에다 음반구입으로 인한 과도한 지출, 술을 즐기는 터라 반복되는 늦은 귀가...
빠듯한 살림살이로 외식 한 번 제대로 못시켜주는 빵점짜리 남편.
일찍 귀가할 때면 방구석에 틀어박혀 음악에만 빠져 대화도 없는 남편.
마누라로부터 섬뜩한 한마디.
"젊어서 잘 하소, 늙어서 구박받지 말고"
으아아아~
혹시 이런 분은 안 계시겠죠?
도대체 음악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