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차를 타고 가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가슴이 절절하더군요. 많이 듣기도 하고 많이 부르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의 노래는
내면 깊숙한 곳에 불쑥 들어와 펄떡이는 심장을 와락 움켜쥐었다 갑니다.
그의 노래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습니다. 조금은 상투적인 이 '영혼의 울림'이란
표현을 제가 아주 좋아해서 여기저기 남발하기도 하는데 김광석의 노래만큼 이 표현이
잘 들어맞는 대상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찬 기운이 대지를 덮고있는 투명한 오후, 강변도로를 달리면서 그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의 알 수 없는 죽음을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여러 해 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던 날 선배들 몇몇과 함께 진한 소주에 그의 노래를
곁들여 밤을 새운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도무지 왜 그가 죽음을 선택했는지 알길이
없었는데 오늘 그의 노래를 듣다보니 문득 그냥 이해가 될 듯도 싶습니다.
가끔 절로 탄성이 나올만큼 훌륭한 연주, 가슴을 뒤흔드는 음악을 만나면, 그래서 그
음악에 감탄하고 경도되어 푹 빠져 있노라면 그 음악이 인간에 속한 것이면서도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인식과 의식의 차원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그 음악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천재적인 음악가에게서 흘러나오는 이 세상 어디어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멜로디,
내 안 깊은 곳을 후비고 가는 가수의 목소리, 사람 자체가 악기인 듯 하나된 첼로 소리,
아름다운,아름다운,아름다운 기타...
이 모든 것이 나와 연결될 때 생겨나는 감정들이 다만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뇌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복잡한 전기 작용과
화학 작용의 묶음이라면 너무 멋대가리 없지 않습니까?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이 우주 어딘가에 사랑, 슬픔, 고통, 기쁨, 환희, 절망, 성취, 회한, 희망, 승리, 갈망, 애틋함,
아련함... 이 모든 감정들의 원형이 모여있는 '감정의 바다'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우주 그 자체 만큼이나 깊고 넓고 복잡해서 인간들이 경험한 감정은 물론, 인간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감정과 생각과 인식과 또 이 작은 머리로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그 무언가가
물컹물컹 뒤섞이고 반응하고 빛을 내며 담겨있는 그런 깊은 '연못'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가끔 그 빛줄기, 물줄기가 인간의 몸과 마음을 통해 흘러나와 '예술'이란 형태로 표현되고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위대한 예술가들은 그 과정에서 일종의'중계기' 혹은 '매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노래'란 형태로 발현된 그 '빛줄기'를 쏟아내며 그는 아마 제가 그의 노래를 듣고 느끼는
것의 백만배쯤되는 최고의 환희와 자유, 그리고 '영혼의 울림'을 느꼈을 것입니다.
폐 속 그득히 들이킨 호흡, 땀방울, 청중의 환호, 기타 소리,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 선명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떨림, 호흡은 소리가 되어 내 보잘것 없는 몸뚱아리가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간다. 슬로우 모션처럼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든 소리가 들리고, 너무나 분명하여
또 너무나 모호하여 일체의 의문이 사라진다.
그렇게 음악가는 음악을 통해 제약을 벗어나고 누릴 수 있는 한 껏 자유를 누리고 기쁨과
슬픔과 격정을 느낄 것입니다.
지난 날 학교 교정의 솔밭 속 한 구석에서, 또 신촌의 어느 뒷 골목 '時作'이라는 이름을
가진 술집에서 줄창 불러대던 김광석의 노래를 오랫만에 듣고 울컥하여 개똥철학,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2005년의 겨울'이란 놈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놓치지 말고
만끽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