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2002.01.26 23:48
[re] 신중현 `대중음악은 죽고 쇼만 남았다` 펀글.
(*.180.99.50) 조회 수 4081 댓글 0
흑흑 이글 너무 감동적이에요!!!!!
죽어가는 대중음악...
우리 대중음악의 현실이죠..
>
>“우리 대중음악은 죽었습니다.
>”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단두대의 칼날처럼 뚝 떨어졌다.
>
>‘한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64).
>
>어두침침한 무대위 노란 백열등 밑 에 서 있었던 탓이었을까.
>
>그의 나지막한 음성은 마치 햄릿의 독 백처럼 더욱 비장하게 다가왔다.
>
>“진짜 음악이 사라지고 있어요.
>
>돈만 생각하는 인간들이 음악이 아닌 ‘쇼(show)’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
>대중은 우롱당하고 있어요.” 서늘한 독설은 그의 작업실이자 공연장인 ‘우드스탁(woodstock) ’안을 맴돌다 가라앉았다.
>
>서울 문정동 로데오 거리에 위치한 5 0여평의 이 지하공간은 바깥세상과 격리된 산사처럼 고요했다.
>
>육중한 방음벽에 둘러싸인 어둠속에는 그의 기타와 드럼, 스피커 , 관객들의 의자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
>“요즘 젊은이들은 생명력있는 노래를 할 줄 몰라요.
>
>깊이있는 음악을 해야하는데….
>
>스튜디오에서 조작된 음악을 들고 나와 춤 을 추며 립싱크를 하고 있어요.
>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요.” 그의 비판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
>노래 그 자체보다 는 기획사의 마케팅이 인기를 좌우하는 시대.
>
>연습한 흔적이 지문처럼 박혀있는 기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 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올해로 록음악을 시작한지 만 40년이 되는 신중현.
>
>짧은 백발, 주름진 얼굴, 왜소한 체구의 이 사내가 정말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스타였을까 하는 의문은 처음부터 들지 않았다.
>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
>“죽은 음악이 판치게 된 것은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책임입 니다.
>
>문화적 사명감을 잃은 인간들이 망쳐놓은거죠.
>
>시간이 지 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젠 위험수위를 넘어섰어요.” 우리 대중음악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어느덧 자신에 대한 고해 성사로 이어졌다.
>
>그동안 젊은 후배들에게 진짜 음악이 무엇인지 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온 음악이 어딘지 모르게 항상 부족하다는 불만.
>
>그는 속죄가 필요 했다.
>
>다음달 12~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
>“음악을 살려야죠.
>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
>록만 하다 가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뭔가를 해야 해요.
>
>이번에 공연하는 것도 진정한 라이브 음악이 뭔지를 후배 와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
>적어도 후배들이 맘놓고 연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만들어 놓고 죽어야죠.” 그러나 그 길이 순탄치 않다는 사실을 그 자신이 더 잘알고 있다 .
>
>지난해 충북 단양의 폐교된 한 초등학교에 ‘신중현의 음악세 계’라는 작업실을 내려던 일도 중단됐다.
>
>문제는 돈이었다.
>
>그 는 “돈만 생기면 당장 내려갈 것”이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
>
>그가 진정으로 안타까운 건 후배들이 돈때문에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못한 채 변두리 밤무대를 전전하며 ‘업소용 반주’만 하 다가 뮤지션으로서의 생명을 스스로 끝내는 일이다.
>
>“한편에서는 돈이 없어 진짜 음악을 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한 편에서는 돈을 위해 진짜 음악을 외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 신중현이 말하는 ‘진짜 음악’이란 뭘까.
>
>“인간적인 느낌과 시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음악이죠.
>
>진짜 음악 은 ‘나는 예술을 하고 있고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명감이 투영된 음악이에요.
>
>몇분만에 뚝딱 하고 만드는 그런 음악이 아 니라는 거죠.” 저항과 통제, 방황과 성장이 공존하던 지난 60~70년대.
>
>신중현은 국내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작은 거인’이었다.
>
>그의 음악 인 생은 중학교 2학년 무렵에서 시작된다.
>
>당시 영등포의 한 악기상 에게 바이올린을 주고 맞바꿨던 미제 통기타.
>
>줄이 끊어지고 네 크(음높이 조절 부위)가 떨어질 때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
>AFKN에 서 흘러나오는 록음악에 심취했던 그는 57년 서라벌고 2학년을 중 퇴한 뒤 음악강사를 하다 미8군 쇼무대에 올랐다.
>
>그곳에서 ‘재 키’라는 애칭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연주실력을 인정받은 신중현 은 62년 국내 최초의 록그룹 ‘애드포’를 결성한다.
>
>이후 지금 까지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는 모두 350여곡.
>
>이 가운데 68년 작곡해 펄시스터즈가 부른 ‘님 으아’는 무려 100만장이 팔린 그의 첫 히트곡이었다.
>
>이후 ‘커피 한잔’ ‘빗속의 여인’ ‘미인’ ‘봄비’ ‘햇님’ ‘꽃잎’ ‘님은 먼곳에’ ‘거짓말이야’ ‘미련’ ‘아름다운 강산’ 등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히트곡 을 양산해냈다.
>
>그에게서 곡을 받은 가수들도 덩달아 스타가 됐 다.
>
>펄시스터즈, 박인수, 김추자, 장현, 장미화….
>
>그들은 모두 당대의 대중문화를 이끌어간 주역들이었다.
>
>그러나 신중현의 음악을 단순히 경력과 수치로만 표현하기엔 부 족하다.
>
>그는 음악인이기 전에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
>그가 대 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시절은 서슬 퍼런 박정희 군사정권 시 절과 맞물려 있었다.
>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록과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절대권력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
>73년 그에게 ‘대통령 찬가’를 만들라는 청와대의 압력이 내려졌고 그는 거부 했다.
>
>대신 ‘아름다운 강산’을 만들었다.
>
>“내가 사랑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나라였거든요.
>
>그래 서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그 노래를 대신 만들었죠.
>
>그런데 그게 반항으로 보였나봐요.” 결국 ‘괘씸죄’에 걸린 그는 75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무 대에서 쫓겨나고 그의 히트곡들은 금지곡으로 묶이고 만다.
>
>이후 그의 노래들은 12년이 지난 87년에야 하나씩 해금됐다.
>
>그래서일까.
>
>신중현의 노래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끈질긴 생명 력을 가진 채 구전처럼 전해진다.
>
>지금 들어도 전혀 ‘촌티’를 느낄 수 없는 세련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록의 기본정신인 자유와 저항이 세월과 함께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
>아들딸 뻘되는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다시 히트시키는 일은 이제 ?聆?일이 됐다.
>
>‘한국록의 개척자’ ‘가요계의 거장’ 등의 수 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
>그는 그러나 이같은 평가에 대해 “단지 남들보다 일찍 록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음악 하나만 보고 살아온 외길 인생을 주위 분들이 인정해주시 는 것 같습니다.
>
>요즘은 이따금씩 음악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 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
>음악에 항상 고마워하며 삽니다.
>
>음악은 제 존재의 의미니까요.” /이승형기자 lsh@munhwa.co.kr
>
>
>
>
> 정말 맞는 말이죠.. (그리구 위에 펄시스터즈 님으아 는 아 에요.. 등록이 안되가지구요 ^^)
죽어가는 대중음악...
우리 대중음악의 현실이죠..
>
>“우리 대중음악은 죽었습니다.
>”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단두대의 칼날처럼 뚝 떨어졌다.
>
>‘한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64).
>
>어두침침한 무대위 노란 백열등 밑 에 서 있었던 탓이었을까.
>
>그의 나지막한 음성은 마치 햄릿의 독 백처럼 더욱 비장하게 다가왔다.
>
>“진짜 음악이 사라지고 있어요.
>
>돈만 생각하는 인간들이 음악이 아닌 ‘쇼(show)’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
>대중은 우롱당하고 있어요.” 서늘한 독설은 그의 작업실이자 공연장인 ‘우드스탁(woodstock) ’안을 맴돌다 가라앉았다.
>
>서울 문정동 로데오 거리에 위치한 5 0여평의 이 지하공간은 바깥세상과 격리된 산사처럼 고요했다.
>
>육중한 방음벽에 둘러싸인 어둠속에는 그의 기타와 드럼, 스피커 , 관객들의 의자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
>“요즘 젊은이들은 생명력있는 노래를 할 줄 몰라요.
>
>깊이있는 음악을 해야하는데….
>
>스튜디오에서 조작된 음악을 들고 나와 춤 을 추며 립싱크를 하고 있어요.
>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요.” 그의 비판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
>노래 그 자체보다 는 기획사의 마케팅이 인기를 좌우하는 시대.
>
>연습한 흔적이 지문처럼 박혀있는 기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 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올해로 록음악을 시작한지 만 40년이 되는 신중현.
>
>짧은 백발, 주름진 얼굴, 왜소한 체구의 이 사내가 정말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스타였을까 하는 의문은 처음부터 들지 않았다.
>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
>“죽은 음악이 판치게 된 것은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책임입 니다.
>
>문화적 사명감을 잃은 인간들이 망쳐놓은거죠.
>
>시간이 지 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젠 위험수위를 넘어섰어요.” 우리 대중음악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어느덧 자신에 대한 고해 성사로 이어졌다.
>
>그동안 젊은 후배들에게 진짜 음악이 무엇인지 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온 음악이 어딘지 모르게 항상 부족하다는 불만.
>
>그는 속죄가 필요 했다.
>
>다음달 12~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
>“음악을 살려야죠.
>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
>록만 하다 가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뭔가를 해야 해요.
>
>이번에 공연하는 것도 진정한 라이브 음악이 뭔지를 후배 와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
>적어도 후배들이 맘놓고 연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만들어 놓고 죽어야죠.” 그러나 그 길이 순탄치 않다는 사실을 그 자신이 더 잘알고 있다 .
>
>지난해 충북 단양의 폐교된 한 초등학교에 ‘신중현의 음악세 계’라는 작업실을 내려던 일도 중단됐다.
>
>문제는 돈이었다.
>
>그 는 “돈만 생기면 당장 내려갈 것”이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
>
>그가 진정으로 안타까운 건 후배들이 돈때문에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못한 채 변두리 밤무대를 전전하며 ‘업소용 반주’만 하 다가 뮤지션으로서의 생명을 스스로 끝내는 일이다.
>
>“한편에서는 돈이 없어 진짜 음악을 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한 편에서는 돈을 위해 진짜 음악을 외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 신중현이 말하는 ‘진짜 음악’이란 뭘까.
>
>“인간적인 느낌과 시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음악이죠.
>
>진짜 음악 은 ‘나는 예술을 하고 있고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명감이 투영된 음악이에요.
>
>몇분만에 뚝딱 하고 만드는 그런 음악이 아 니라는 거죠.” 저항과 통제, 방황과 성장이 공존하던 지난 60~70년대.
>
>신중현은 국내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작은 거인’이었다.
>
>그의 음악 인 생은 중학교 2학년 무렵에서 시작된다.
>
>당시 영등포의 한 악기상 에게 바이올린을 주고 맞바꿨던 미제 통기타.
>
>줄이 끊어지고 네 크(음높이 조절 부위)가 떨어질 때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
>AFKN에 서 흘러나오는 록음악에 심취했던 그는 57년 서라벌고 2학년을 중 퇴한 뒤 음악강사를 하다 미8군 쇼무대에 올랐다.
>
>그곳에서 ‘재 키’라는 애칭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연주실력을 인정받은 신중현 은 62년 국내 최초의 록그룹 ‘애드포’를 결성한다.
>
>이후 지금 까지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는 모두 350여곡.
>
>이 가운데 68년 작곡해 펄시스터즈가 부른 ‘님 으아’는 무려 100만장이 팔린 그의 첫 히트곡이었다.
>
>이후 ‘커피 한잔’ ‘빗속의 여인’ ‘미인’ ‘봄비’ ‘햇님’ ‘꽃잎’ ‘님은 먼곳에’ ‘거짓말이야’ ‘미련’ ‘아름다운 강산’ 등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히트곡 을 양산해냈다.
>
>그에게서 곡을 받은 가수들도 덩달아 스타가 됐 다.
>
>펄시스터즈, 박인수, 김추자, 장현, 장미화….
>
>그들은 모두 당대의 대중문화를 이끌어간 주역들이었다.
>
>그러나 신중현의 음악을 단순히 경력과 수치로만 표현하기엔 부 족하다.
>
>그는 음악인이기 전에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
>그가 대 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시절은 서슬 퍼런 박정희 군사정권 시 절과 맞물려 있었다.
>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록과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절대권력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
>73년 그에게 ‘대통령 찬가’를 만들라는 청와대의 압력이 내려졌고 그는 거부 했다.
>
>대신 ‘아름다운 강산’을 만들었다.
>
>“내가 사랑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나라였거든요.
>
>그래 서 나라 사랑의 마음으로 그 노래를 대신 만들었죠.
>
>그런데 그게 반항으로 보였나봐요.” 결국 ‘괘씸죄’에 걸린 그는 75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무 대에서 쫓겨나고 그의 히트곡들은 금지곡으로 묶이고 만다.
>
>이후 그의 노래들은 12년이 지난 87년에야 하나씩 해금됐다.
>
>그래서일까.
>
>신중현의 노래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끈질긴 생명 력을 가진 채 구전처럼 전해진다.
>
>지금 들어도 전혀 ‘촌티’를 느낄 수 없는 세련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록의 기본정신인 자유와 저항이 세월과 함께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
>아들딸 뻘되는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다시 히트시키는 일은 이제 ?聆?일이 됐다.
>
>‘한국록의 개척자’ ‘가요계의 거장’ 등의 수 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
>그는 그러나 이같은 평가에 대해 “단지 남들보다 일찍 록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음악 하나만 보고 살아온 외길 인생을 주위 분들이 인정해주시 는 것 같습니다.
>
>요즘은 이따금씩 음악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 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
>음악에 항상 고마워하며 삽니다.
>
>음악은 제 존재의 의미니까요.” /이승형기자 lsh@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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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맞는 말이죠.. (그리구 위에 펄시스터즈 님으아 는 아 에요.. 등록이 안되가지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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