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GuitarMania

(*.46.7.209) 조회 수 4604 댓글 0
[눈으로듣는음악이야기]

쳄발로, 사방에 별이 촘촘히 박힌 까만 밤하늘

어릴 때 디즈니의 에니메이션을 보면 팅커벨이 사뿐 날아다니면서 살짝 스치는 모든 것에 마술봉을 톡!톡! 쳐서 눈부신 가루를 퐁퐁 솟아나게 하곤 했습니다. 그 장면이 왜 그리 머릿속에 깊게 남아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키가 성큼 자라버린 오늘까지 가끔 그렇게 반짝반짝 빛을 머금은 유리조각, 아니, 어쩌면 달콤한 설탕조각인지도 모릅니다. 아시죠? 설탕을 굳혀 반투명하게 된 조각, 전, 쳄발로를 들으면, 그 팅커벨의 마술봉에 머리를 한 대 톡! 맞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쳄발로라는 악기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팅커벨의 마술봉, 톡!톡!톡!

쳄발로의 매력은 크레센도와 데크레센도가 강렬한 바이올린의 다이내믹함에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밤하늘에 비유한다면 바이올린은 혜성쯤 되는 것 같습니다. 서쪽 끝 지평선에서부터 솟아올라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며 긴 꼬리를 자랑하고 다시 이쪽 끝으로 사라지는 혜성말이죠. 어쩌면 밤하늘 긴 장막을 찢어내는 메스인지도 모릅니다. 가끔 바이올린을 들으면 제 마음에서 피가 나거든요.

또한 쳄발로는 올려다보는 사람의 심경에 따라 따뜻하게도 애틋하게도 들리는 기타와도 다릅니다. 기타는 밤하늘의 달님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둥글었다 뾰족해졌다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같은 둥근 달님이라고 해도, 그리운 이의 얼굴이 되었다 고향마을 지키는 어머니 가슴이 되었다 아무도 두드리지 않는 창문 아래를 지켜선 나 자신의 모습이 되기도 하지요. 기타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그것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완벽하지 않은 매력을 갖추었습니다.

쳄발로는 긴꼬리별도 아니고 달님도 아닙니다. 그것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까만밤하늘에 빈 곳이 없이 가득찬 별조각들입니다. 반짝거리는 별조각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밤하늘을 꼭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음들이 혼자 외따로 있지 않고, 바로 다음, 바로 다음 연속하여 따라나오면서, 마치 화려하게 수놓아진 벨벳천을 가득가득 깔아놓는 듯, 음악의 가장 바깥쪽 공간을 에워싸는 대기로 변모합니다. 그것은 정성껏 커팅된 다이아몬드입니다. 빛은 다이아몬드의 24면, 64면, 128면에 순간적으로 스치면서 분절을 연속으로 만들고 서로를 서로에게 반사합니다. 쳄발로의 음들은 바로 다음 음에게 생명을 주고 사라집니다. 쳄발로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끝없이 펼쳐진 붉은 계단, 미인의 희고 고른 치열에 반사되는 햇빛, 언제까지고 계속 돌아갈 것만 같은 드럼통 안에서 계속계속 휘감겨나오는 솜사탕, 깊은 산속 고개를 들었을 때 빈곳없이 가득한 별조각 쏟아지던 그 밤 한자락이었습니다.

물론 쳄발로는 화려하게 반짝이기만 하는 악기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가슴을 파고드는 유리조각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손가락을 내밀었다가는 온통 베일 수 있는 날카로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혹, 당신의 팔과 다리를 눌러 꼼짝하게 할 수 없는, 목부터 가슴을 압박해 숨도 쉴 수 없게 만드는 슬픔이기도 합니다. 쳄발로의 슬픔은 바이올린처럼 흐느껴 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타처럼 아픔을 한가운데 삭여 다시금 둥근 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만가만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눈물입니다. 방울방울 양볼을 따라 흘러내려 한줄기가 되는 눈물입니다.

바하의 FANTAISIE CHROMATIQUE & FLUGUE와 같은 곡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쳄발로의 기운을 느낄 수 있구요- 그리고- 숨조차 쉴 수 없는, 닿을 수 없어 더욱 애틋한 열망은 앙타이의 골드베르크변주곡에서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참, 왜 팅커벨 이야기 하다가 마느냐구요? 어떻게하면 팅커벨의 마술봉에 한 대 맞을 수 있냐구요?
아직 당신에게는 팅커벨이 찾아오지 않았나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적혈구가 갑자기 금혈구/은혈구로 변하는 그 짜릿함을 느껴볼 수 없었나요?
발견하세요, 당신의 다이아몬드를, 커팅되지 않은 그것은 당신의 눈빛(!)에 아름답게 커팅되어 팅커벨의 금빛은빛 가루를 퐁퐁 터트려줄거예요. 그/그녀를 발견하는 그 순간, 그 순간, 당신은 피터팬이 되어 팅커벨을 알아볼 수 있을거예요. 잊지말아요, 이 세상 어딘가에 꼭, 그 사람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병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금 "사랑"을 주제로 삼다, 2002년 7월)




  
?

  1. gmland 님께...

    Date2003.05.13 By아랑 Views6079
    Read More
  2. 지금 재미없는 현대음악은 영원히 재미없을것이다.

    Date2003.05.12 By Views5276
    Read More
  3. [re] 화성학은 바하요, 바하는 화성학일 겁니다.

    Date2003.05.13 Bygmland Views6502
    Read More
  4. [re] 맞아요. 지금 재미없으면 영원히 재미없을 확률이 높지요.

    Date2003.05.13 Bygmland Views4662
    Read More
  5. 유구음계와 조선 전통음계의 비교 - 나운영 선생의 이론 소개

    Date2003.05.07 Bygmland Views9081
    Read More
  6. .

    Date2003.04.28 By정천식 Views5680
    Read More
  7. .

    Date2003.04.30 Bygmland Views5408
    Read More
  8. 고대 그리스의 테트라코드와 음계...

    Date2003.04.28 By신동훈 Views7165
    Read More
  9. 고대지명과 음계에 관한 단상...

    Date2003.04.22 By신동훈 Views10689
    Read More
  10. 아! 『기타 화성학』1

    Date2003.04.26 Bycom Views7318
    Read More
  11. 제생각엔...

    Date2003.04.28 Byseneka Views4468
    Read More
  12. [re] 아! 『기타 화성학』1

    Date2003.04.26 By09 Views5396
    Read More
  13. 방랑화음 Wandering chords

    Date2003.04.24 Bygmland Views5951
    Read More
  14. 연주와 나이

    Date2003.04.23 Byniceplace Views5310
    Read More
  15. [re] 연주와 나이... 어려운 문제네요?

    Date2003.04.23 Bygmland Views4671
    Read More
  16. [re] 연주와 나이...

    Date2003.04.24 By Views4780
    Read More
  17. 고대지명과 음계에 관한 단상...

    Date2003.04.22 By신동훈 Views5632
    Read More
  18. POP 음악의 장르와 대중음악 略史

    Date2003.04.15 Bygmland Views6228
    Read More
  19. 우리가 [크다] 라고 말하는 것들 !!

    Date2003.04.11 Bycom Views5831
    Read More
  20. 바로크적인해석이란어떤것인가 궁금하네요.

    Date2003.04.11 Byhesed Views4859
    Read More
  21. Dm 관계조 Scale 연습과 Chaconne (4)

    Date2003.04.10 Bygmland Views7883
    Read More
  22. 운지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러합니다.

    Date2003.04.09 Bygmland Views4456
    Read More
  23. [re] 운지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러합니다.

    Date2003.04.09 By아랑 Views5733
    Read More
  24. 원로 윤형근 화백의 예술 이야기.

    Date2003.04.09 By아랑 Views5464
    Read More
  25. 4월 4일, 5일 양일간 야나첵 현악사중주단 연주회 후기

    Date2003.04.07 By으니 Views4714
    Read More
  26. 기타와 음악요법

    Date2003.04.05 Bychobo Views4881
    Read More
  27. 동경 국제콩쿨 요강 입니다.

    Date2003.04.03 By신인근 Views4536
    Read More
  28. D 단조 Scale 연습과 Chaconne (3)

    Date2003.04.04 Bygmland Views5591
    Read More
  29. D 단조 Scale 연습과 Chaconne (2)

    Date2003.04.03 Bygmland Views6625
    Read More
  30. D 단조 Scale 연습과 Chaconne (1)

    Date2003.04.03 Bygmland Views8566
    Read More
  31. 원음과 사이음에 대하여

    Date2003.03.30 Bycom Views6439
    Read More
  32. 7화음 풀어쓰기 스케일 연습 - 예제

    Date2003.03.27 Bygmland Views6433
    Read More
  33. 팻 매시니...........첨으로 그의 음반을 듣다.

    Date2003.03.26 By Views6438
    Read More
  34. 앙헬 로메로의 샤콘느

    Date2003.03.26 Byorpheous Views4893
    Read More
  35. 스케일 연습의 종류 - 알파님께 답글

    Date2003.03.26 Bygmland Views5911
    Read More
  36. 질문의 의도는...

    Date2003.03.26 By알파 Views4306
    Read More
  37. [re] 3화음 풀어쓰기 스케일 연습 - 예제

    Date2003.03.26 Bygmland Views5393
    Read More
  38. 연주에 있어서,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

    Date2003.03.25 Bygmland Views5046
    Read More
  39. 바람직한 연주자가 되려면

    Date2003.03.24 Bygmland Views5929
    Read More
  40. 부탁 한가지

    Date2003.03.26 By알파 Views4335
    Read More
  41. Imagine

    Date2003.03.24 Bygmland Views4882
    Read More
  42. 어떤분들에겐 클래식음악하는분들이 어떻게 보일까?

    Date2003.03.19 By Views5395
    Read More
  43. [re] 어떤분들에겐 클래식음악하는분들이 어떻게 보일까?

    Date2003.03.21 By지나다가 Views4441
    Read More
  44. 비발디를 듣다...!

    Date2002.10.30 By차차 Views4465
    Read More
  45. [re] 비발디를 듣다...! (차차님 보세요 ^^)

    Date2002.11.02 By신동훈 Views7459
    Read More
  46. 파크닝 재발견...

    Date2002.10.30 By차차 Views5543
    Read More
  47. 새솔님께 질문! (연주에서 방향성에 대하여.)

    Date2002.10.29 By차차 Views4252
    Read More
  48. [re] 새솔님께 질문!(답변입니다.)

    Date2002.10.29 By새솔 Views6268
    Read More
  49. 윌리엄 크리스티의 베를린필 데뷔연주!

    Date2002.10.24 By고충진 Views4251
    Read More
  50. 플라멩코 이야기6

    Date2002.10.24 By김영성 Views6479
    Read More
  51. 플라멩코 이야기 5

    Date2002.10.23 By김영성 Views5128
    Read More
  52. 작품번호에 관하여..(초보분들을위해서)

    Date2002.10.21 By컨추리 Views5361
    Read More
  53. 빌라로보스의 초로에 대해서 알려주세여...

    Date2002.10.13 By알수없는 Views4909
    Read More
  54. 샤콘느에 대하여... (배인경) : 출처 http://iklavier.pe.kr/

    Date2002.10.09 By고정석 Views6329
    Read More
  55. 뒤늦은 연주회 후기 - 바루에코 2002/9/8

    Date2002.09.27 By으니 Views4565
    Read More
  56. [re] 호기심 killed 으니 - 바루에코의 겨울 연주는 누구의 편곡?

    Date2002.10.09 By으니 Views4895
    Read More
  57. 피아졸라 겨울은 예상대로 바루에코 자신의 편곡이라고 합니다

    Date2002.10.11 By으니 Views6303
    Read More
  58. 아쉰대로 이삭의 연주를 들어보시구...

    Date2002.10.09 By신동훈 Views4417
    Read More
  59. 윤소영............바이올리니스트.

    Date2002.09.26 By Views6501
    Read More
  60.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그의 울림이 내게로 전해져왔다

    Date2002.09.21 By으니 Views4586
    Read More
  61. [re]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디스코그라피

    Date2002.09.21 By으니 Views4403
    Read More
  62. 랑그와 빠롤로 이해해본 음악! (수정)

    Date2002.09.17 By고충진 Views6902
    Read More
  63. 랑그와 빠롤...........타인의 취향.

    Date2002.09.18 By Views4700
    Read More
  64. [re] (고클에서 펀글) 랑그와 빠롤이라... 글쓴이 표문송 (dalnorae)

    Date2002.09.18 By고충진 Views7740
    Read More
  65. 윈도XP를 위한 앙코르 아직 안 나왔나요??

    Date2002.08.10 By병욱이 Views4374
    Read More
  66. 플라멩코 이야기 4

    Date2002.08.05 By김영성 Views5385
    Read More
  67. Francis Kleynjans와 brilliant guitarists알려주세요.

    Date2002.08.02 Bywan Views5785
    Read More
  68. 플라멩코 이야기 3

    Date2002.07.25 By김영성 Views5816
    Read More
  69. 플라멩코 이야기 2

    Date2002.07.24 By김영성 Views5069
    Read More
  70. 플라멩코 이야기 1

    Date2002.07.23 By김영성 Views5874
    Read More
  71. 스페인= 클래식기타? 플라멩코기타?

    Date2002.07.22 By김영성 Views4851
    Read More
  72. 다이기무라의 바덴재즈를 듣고...(추가)

    Date2002.07.06 By으랏차차 Views4981
    Read More
  73. [눈으로듣는음악이야기] 쳄발로, 사방에 별

    Date2002.07.05 By으니 Views4604
    Read More
  74. 쳄발로에 바쳐질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찬사..!!! *****

    Date2002.07.05 By으랏차차 Views4613
    Read More
  75. 쳄발로, 사방에 별이 촘촘히 박힌 까만 밤하늘...

    Date2002.07.05 By신동훈 Views4769
    Read More
  76. William Ackerman 아시는분

    Date2002.06.24 Byjj Views22540
    Read More
  77. 이번 논문에대한 자평과 감사의 글..

    Date2002.06.12 By으랏차차 Views4901
    Read More
  78. [질문]바하와 건축

    Date2002.06.06 By으랏차차 Views4867
    Read More
  79. [re] [질문]바하와 건축 (뒷북이 아니길)

    Date2002.06.11 By으니 Views4453
    Read More
  80. [re] [질문]바하와 건축 (도움글 조금 더)

    Date2002.06.11 By으니 Views4396
    Read More
  81. 바하와 건축 (도움글 조금 더)에 대한 도움글 더... ^^

    Date2002.06.11 By신동훈 Views5163
    Read More
  82. [re] [질문]바하와 건축

    Date2002.06.08 By채소 Views4298
    Read More
  83. [re] [질문]바하와 건축

    Date2002.06.08 By신동훈 Views4761
    Read More
  84. Milonga Del Angel (A.Piazzolla)

    Date2002.05.23 Byorpheous Views6262
    Read More
  85. [re]Milonga Del Angel과 옥타브하모닉스

    Date2002.05.24 Bynitsuga Views6712
    Read More
  86. senza basso, JS Bach

    Date2002.05.23 By채소 Views5497
    Read More
  87. 바하의 실수... 글구 울나라 음악

    Date2002.05.22 By신동훈 Views4816
    Read More
  88. 반박글 절대 아님.

    Date2002.05.24 By지나가는얼빵 Views5039
    Read More
  89. 덧붙여... 단순한걸루 보면...

    Date2002.05.24 By신동훈 Views4898
    Read More
  90. Date2002.05.20 By으니 Views4471
    Read More
  91. 카바티나

    Date2002.05.02 Byorpheous Views4625
    Read More
  92. 아~~~ Jordi Savall!!!

    Date2002.04.26 By일랴나 Views4372
    Read More
  93. 트레몰로에 대한 변증법적이 고찰........지얼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Date2002.04.16 By Views5988
    Read More
  94. 음... 1045번... ㅡㅡ+

    Date2002.04.12 By신동훈 Views4624
    Read More
  95. 연주에 관한 몇가지 단상들.......(과객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Date2002.04.10 By Views4299
    Read More
  96. 지기스발트 쿠이겐 VS 라인하르트 괴벨

    Date2002.04.05 Bylovebach Views6651
    Read More
  97. 바흐의 주요 건반음악 작폼 음반목록 입니다~~~~

    Date2002.04.05 Bylovebach Views33375
    Read More
  98. 바흐작품목록 2

    Date2002.04.03 Bylovebach Views14521
    Read More
  99. 바흐작품목록 입니다~~ 한번 보세요~~~~ ^^ 1

    Date2002.04.03 Bylovebach Views7665
    Read More
  100. 음... 사라진 바하의 협주곡들... ㅡㅡ;

    Date2002.03.30 By신동훈 Views4973
    Read More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Next ›
/ 1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hikaru100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