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사우라(Carlos Saura) 감독은 1980년대에 열을 올려 발표했던 플라멩꼬 발레 3부작 - 피의 혼례(Bodas de Sangre, 1981), 카르멘(Carmen, 1983), 사랑은 마술사(El Amor Brujo, 1986) - 이후 한동안 플라멩꼬 발레를 제작하지 않다가 16년이 지난 2002년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살로메(Salome, 1894)"를 플라멩꼬 발레로 각색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플라멩꼬의 흐름에서 벗어나 누에보 플라멩꼬(Nuevo Flamenco, ‘새로운 플라멩꼬’라는 의미)의 흐름을 받아들여 발표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사우라 감독의 발레 영화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나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플라멩꼬 발레를 연습하는 무대를 고집해왔다.
따라서 대체로 심플하고 모던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주위 배경에 시선이 빼앗기지 않고 발레 동작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피의 혼례"의 경우 분장실과 마루가 깔린 연습실이 영화에 나오는 무대의 전부일 정도로 심플하다.
그리고 "카르멘" 역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사랑은 마술사"는 이에 비해 다소 너저분한 인상을 주는데 이 발레의 배경이 집시들이 거주하는 빈민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무대에서의 촬영을 고집해온 지금까지의 컨셉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살로메"의 무대 역시 대단히 심플하다.
조명을 비추는 스탠드형의 스크린 몇 개와 거울이 전부다.
영화를 보고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대에서 펼쳐지는 발레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살로메는 영국(아일랜드)의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극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워낙 퇴폐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라 영국에서 출판되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영문으로 출판된 살로메의 표지.)
1894년에 완성한 이 희곡은 탐미주의적 경향의 작품으로서 일탈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그의 세기말적인 사상을 대변하는 대표작이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그다지 길지 않은 작품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예로부터 화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가 되어왔다.
모로(G. Moreau), 프레티(M. Pretti), 비어즐리(A. Beardsley), 베첼리(T. Vecelli), 클림트(G. Klimt)…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작품에 삽화를 그렸던 비어즐리의 그림)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쉬트라우스(R. Strauss, 1864~1950)는 이 작품을 1905년에 오페라로 완성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다들 줄거리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된다.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오페라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한다.
무대는 헤로데(Herode) 왕의 궁전이 있는 웅장한 테라스.
안에서 성대한 연회의 흥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위병대장 나라보트(Narraboth)는 아름다운 공주 살로메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노래한다.
이때 지하의 우물 감옥으로부터 세례 요한(St. John the Baptist)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헤로디아스(Herodias)가 이복 시동생인 헤로데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한 부도덕함을 꾸짖는 것이다.
살로메는 끈질기게 추파를 던지는 계부 헤로데 왕을 피해 정원을 거닐다가 세례 요한의 목소를 듣는다.
호기심이 동한 살로메는 세례 요한을 데려 오도록 명한다.
누더기를 걸친 세례 요한이 나타나자 살로메는 그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음탕하게 세례 요한을 유혹하는 모습을 본 나라보트는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나라보트의 죽음에 동요도 않고 여전히 세례 요한을 유혹하지만 살로메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세례 요한은 또 다시 음탕하고 부정한 공주를 경고한다.
헤로데 왕은 살로메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살로메를 불러 들인다.
이때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모여 세례 요한의 처형을 요구하지만 메시아와 같은 존재인 그를 두려워하여 이를 거부한다.
왕은 살로메에게 자기를 위해 춤을 출 것을 요구하지만 응하지 않자 몸이 달아 어쩔 줄 모른다.
살로메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설사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살로메는 유명한 "일곱 개의 베일의 춤"을 춘다.
베일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요염하고 음탕한 춤을 추다가 왕의 발 밑에 쓰러진다.
넋이 나간 왕이 원하는 것을 묻자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머리라고 말한다.
왕은 놀라며 다른 것을 요구하라고 하지만 살로메는 요지부동이다.
왕은 마지못해 권위의 상징인 반지를 뽑아 그녀에게 던지고 살로메는 사형 집행을 명한다.
세례 요한의 목이 은쟁반에 담겨 들어오자 살로메는 죽은 모습이 아름답다고 찬미한다.
그리고 욕정적인 춤을 추며 세례 요한의 입술에 열정적인 키스를 퍼붓는다.
왕은 더 이상 이 같은 광란을 참지 못하고 살로메를 죽이라고 명한다.
먼저 이 영화의 주요 출연진을 소개한다.
Salome(살로메)… Aida Gomez
San Juan(세례 요한)… Javier Toca
Herodes(헤로데)… Paco Mora
Herodias(헤로디아스)… Carmen Villena
사우라 감독의 이 영화는 원작과 기본적인 설정은 같지만 나라보트도 안 나오고 유대교 지도자들도 안 나온다.
사우라 감독의 플라멩꼬 영화가 늘 그랬던 것처럼 출연자들의 분장 모습과 연습장면부터 비추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80여 분에 이르는 영화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대략 첫 30분 가량을 출연진과의 인터뷰와 연출과정을 담고 있다.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70세라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우라 감독이 50대에서 보여주었던 플라멩꼬 발레 3부작의 불꽃 같은 열정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 바로 살로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영화와는 달리 처음부터 흘러 나오는 음악은 전통적인 플라멩꼬 음악과는 사뭇 다르다.
누에보 플라멩꼬의 선두주자 토마티토(Tomatito, 작은 토마토)의 기타 반주 위에 전통적인 편성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소프라소 색스폰이 울려 나온다.
이 소프라노 색스폰을 부는 사람이 바로 음악 감독을 맡았던 로께 바뇨스(Roque Bano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