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의 선구자 - 솔레르 신부(2)
별첨 파일은 앞서 소개한 곡과 동일한 "Sonata in D, SR 84"로서 기타가 아닌 피아노의 연주로 들어 보시죠. 비교해서 들어 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스페인 음악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고 있는 알리시아 데 라로차 여사의 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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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레르 신부의 생애와 작품세계
솔레르 신부는 1729년 까딸루냐 지방 헤로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군악대의 단원이었다고 한다. 6세부터 몬트세라트 수도원의 소년합창단원으로 있으면서 정규 음악교육을 받았는데 조숙했던 솔레르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까딸루냐 지방 레리다 대성당의 성가대장 겸 오르간 주자로 뽑혀 8년 동안 봉사한 후 신부(Padre)가 된다. 그리고 1752년에는 마드리드 인근의 엘 에스꼬리알(El Escorial) 궁정에 초빙되어 그 곳의 수도원에서 성직과 오르간 주자를 겸하게 된다.
이곳에서 스페인 궁정에 오랜 동안 머물고 있던 만년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 Scarlatti 1685~1757)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는데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솔레르 신부는 스페인 국왕 까를로스 3세의 아들인 돈 가브리엘 왕자의 음악교사까지도 겸하게 되는데 이 왕자는 음악에 상당한 재능이 보였다고 하며 하프시코드(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는 이 왕자를 위해 작곡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는 대단한 일꾼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직자로서 교회의 업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작곡과 연주, 왕자의 음악교육과 저술 등으로 쉴 틈이 없었다고 하며 밤에는 거의 잠을 자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조바꿈의 열쇠 그리고 음악에 대한 옛이야기(Llave de la Modulacion y antiguedades de la musica, 1762)》라는 주목할 만한 저술도 남기고 있는데 짧은 순간에 어떤 조에서 24개의 모든 조로 조바꿈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1783년에 이 곳에서 죽을 때까지 30여 년 동안 신부로 봉직하였다. 다음은 솔레르 신부가 남긴 작품들의 대략적인 목록이다.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200여 곡
현악4중주와 오르간을 위한 5중주 6곡
2대의 오르간을 위한 콘체르토 6곡
9개의 미사곡과 5곡의 레퀴엠
카톨릭 전례음악 120여 곡
132곡의 비얀시코(Villancico)
솔레르 신부가 남긴 많은 작품들 중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와 6곡의 《오르간 콘체르토》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곡들이지만 나머지는 거의 소개가 되지 않아 전체적인 평가가 어렵다. 하루 빨리 그의 종교음악에 대한 음반들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솔레르가 남긴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는 하이든(J. Haydn 1732~1809)에 의해 확립된 다악장 형식이 아니라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영향을 받은 단악장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솔레르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는 과감한 악상의 도약이라든지, 스페인 음악에 자주 나타나는 당김음의 사용, 양손이 자주 교차하는 연주법 등 부정할 수 없는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분산화음에 의한 알베르티 베이스(Alberti Bass)를 솔레르는 애용했으나 스카를라티는 그다지 자주 사용하지 않는 점, 스카를라티는 아차카투라(acciaccatura)라고 하는 꾸밈음을 자주 사용했으나 솔레르는 드물게 사용하고 있는 점, 등에서 서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솔레르의 후기 작품 속에는 단악장이 아닌 다악장의 소나타도 있다.
다악장 양식의 소나타에는 젊은 시절의 모차르트에게서 느껴지는 경쾌하고 우아한 '갈란테 스타일(galant style)'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로코코 시대로 접어든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솔레르의 작품경향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에다 스페인적인 색채로 덧칠을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즉, 스카를라티가 인생의 중반 이후를 스페인에서 보낸 만큼 스페인적인 경향의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솔레르 신부에 비해 스페인적인 색채가 희미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솔레르가 남긴 작품 중 비교적 널리 알려진 《판당고(Fandango 스페인 남부지방의 춤곡)》는 스페인 민중들의 숨결로 가득 차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은 '스페인적인 색채'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플라멩꼬 음악에서 느껴지는 '격렬함'이나 '정열'과 같은 것으로 해석하지 말기를 바란다. 솔레르 신부가 살았던 시기는 우리들이 요즈음에 자주 접하는 플라멩꼬 음악양식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때이기 때문이다. 플라멩꼬 음악이 '스페인적인 색채'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페인 남부지방의 음악적인 요소와 외래민족인 집시의 음악적인 요소가 결합된 것으로서 대기(大器) - 스페인 음악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플라멩꼬 음악이 갖는 격렬함과, 프랑스의 작곡가인 비제가 이국적 취향에 의해 작곡한 《카르멘》과 같은 음악은 우리들에게 스페인 음악에 대한 편향된 고정관념을 심어준 측면이 많다. 오히려 솔레르 신부의 음악에는 투우사의 절도있는 몸 동작에서 느껴지는 어떤 '멋스러움'이나 '우아함'과 같은 것이 녹아있다. 플라멩꼬 음악을 듣고 스페인다운 '멋스러움'이나 '우아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모짜르트의 음악에는 '우아함'은 있어도 스페인다운 '멋스러움'은 없다. 나는 이 '멋스러움'이나 '우아함'이 바로 스페인 민중들의 숨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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