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민족주의 음악의 완성자, 파야(4)
파야는 인기 있는 작곡가이니 만큼 음반도 부지기수로 많다. 이 많은 음반들에서 옥석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오페라 《허무한 인생》의 전곡을 연주한 음반이 많지 않아 필자가 보유한 2종의 음반만 들어보았다. 파야의 제자인 에르네스토 알프테르(HMV)가 지휘한 음반과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Angel)가 지휘한 음반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우열을 가리기 힘든 연주다. 다만 알프테르의 음반은 모노 녹음이라 아무래도 음질에서 떨어진다는 면에서 스테레오 음반인 부르고스의 연주를 권하고 싶다.
살루드(Salud) 역은 둘 다 로스 앙헬레스가 맡고 있는데 알프테르 지휘에서 더 싱싱한 가창을 보여주고 있지만 부르고스 지휘에서는 원숙미가 느껴진다. 2막의 아리아 《거기서 그는 웃고 있건만》는 부르고스의 음반이 더 낫다.
전곡 연주가 아닌 아리아만을 수록하고 있는 음반도 있는데 로빈슨의 지휘와 로스 앙헬레스의 콤비에 의한 음반(EMI CDH 7 64028 2)은 최고의 명연을 들여주고 있다. 1948년도 녹음이라 다소 낡았지만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협연도 최고이다. 《행복은 웃는 자의 것》과 《거기서 그는 웃고 있건만》은 로스 앙헬레스의 연주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고 싶다.
《7개의 스페인 민요》도 많은 음반이 있다. 콘치타 수페르비아(C. Supervia 1895~1936)의 노래(Odeon)는 지나간 세대의 창법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하지만 다소 심한 듯한 비브라토가 약간 귀에 거슬린다. 테레사 베르간사의 노래(BIS)는 힘있고 어두운 음색이 곡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데 표정이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로스 앙헬레스는 스페인 정서에 맞는 모범적인 노래(Angel)를 들려주고 있는데 육감적인 집시 여인의 체취까지 느껴지는 훌륭한 연주이다. 기타 반주로 편곡한 음반도 있는데 예페스(N. Yepes)의 기타반주 아래 테레사 베르간사는 피아노에서보다 더 멋진 연주를 들여주고 있다. 피아노 반주보다도 기타 반주가 어울리는 건 기타가 스페인의 민속악기이고 이 곡들이 기타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야의 대표적인 작품인 《사랑은 마술사》도 스토코프스키(Columbia), 장 마르티농(Columbia), 줄리니(Angel), 로젠탈(Westminster), 앙세르메(Decca) 등이 지휘한 음반이 있는데 줄리니의 음반을 추천한다. 오케스트라는 앙세르메가 좋으나 독창자의 가창이 로스 앙헬레스에 비해 스페인적인 감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어 다소 아쉽다.
줄리니와의 콤비에 의한 로스 앙헬레스가 부른 《괴로운 사랑의 노래》은 정말 일품이다. 이 노래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깐떼 혼도 스타일의 노래인데 스페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으므로 스페인 사람이 아닌 경우는 제대로 표현이 어렵다. 《도깨비불의 노래》, 《사랑놀이의 춤》도 절창인데 집시여인의 관능적인 분위기까지 잘 포착하고 있다.
《스페인 정원의 밤》도 아르헤리히(Erato), 하스킬(Philips), 소리아노(EMI), 라로차(Decca), 카자드쉬(Columbia)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들 비중 있는 피아니스트들이지만 라로차 여사와 코미시오나 콤비에 의한 연주와 소리아노와 부르고스의 콤비에 의한 연주를 추천한다. 어느 것 하나 기울지 않는 팽팽한 연주다.
특히 코미시오나의 지휘는 밤의 풍경을 기막히게 묘사하고 있다.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옛부터 색채감 있는 이러한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낸 만큼 물 만난 고기처럼 지휘자를 잘 따르고 있다. 독주자인 라로차 여사의 연주도 발군이다. 소리아노와 부르고스의 콤비도 훌륭하다. 이들은 둘 다 스페인 음악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들이라 여유가 느껴지는데 대략 25분이 걸리는 연주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음악에 빠져들게 만든다.
《삼각모자》도 부르고스(EMI), 앙세르메(Decca), 찰스 메케라스(Vanguard), 로진스키(Angel), 헤수스 아람바리(Columbia), 엔리케 호르다(Hallmark), 불레즈(Columbia), 줄리니(EMI), 헤수스 코보스(Claves) 등이 지휘한 음반이 있다. 이 중 부르고스와 앙세르메를 추천한다. 부르고스는 원래 독일인이었지만 스페인이 좋아 귀화한 만큼 스페인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앙세르메는 오케스트라로 그림을 그린다는 지휘자니 만큼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독창자로 나오는 수잔 당코의 귀여운 노래도 좋다. 이 작품은 유난히 스페인의 여러 가지 춤곡이 많이 나오는데 '방앗간집 마누라의 춤'은 판당고(Fandango)라는 춤곡을 토대로 한 것이고, '이웃사람들의 춤'은 세기디야(Seguidilla)라는 춤곡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 곡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방앗간 주인의 춤'은 파루카(Farucca)라는 아주 격렬한 춤으로 기타곡으로 편곡하여 자주 연주되고 있다. 헤수스 코보스가 지휘한 음반(Claves)은 이 곡의 원곡인 《시장과 방앗간집 마누라》을 연주하고 있는데 이 두 곡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작곡가의 개작과정을 짐작해볼 수 있어 무척 재미있다.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 《쳄발로 협주곡》, 《아틀란티다》는 음반이 많지 않고 아직 CD로 나온 음반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파야의 작품 중 연주기회도 많지 않고 그리 인기 있는 곡들이 아니라서 CD녹음은 한참을 기다려야할 것 같다.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은 아르헨타(London)와 에르네스토 알프테르(Ducretet Tomson)가 지휘한 음반이 있는데 아르헨타의 녹음을 추천한다.
《쳄발로 협주곡》역시 2종의 음반이 있다. 아르헨타(London)와 불레즈(Columbia)가 지휘한 음반이 있는데 아르헨타의 음반은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과 같이 커플링이 되어 1장의 음반으로 둘 다를 들어볼 수 있어 좋다. 다만 LP녹음이라 음반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흠이다.
파야의 미완의 대작인 칸타타 《아틀란티다》는 그의 제자 에르네스또 알프테르(E. Halffter)가 완성하였는데 EMI에서 1978년 LP로 녹음하였다.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의 애정 어린 지휘가 담긴 음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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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식님의 파야에 관한글이 생각나 더 귀기울여듣게 되더군요.
cancions populares espanolas for violin and guitar 라는곡인데
호타, 아스투리아스, 폴도등등 귀에 익은 정열적인 멜로디가 들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