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jungmin.hanyang.ac.kr/(출처)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말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미친 듯한 열정으로 하지 않으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남아 있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나 문학 작품도 피눈물나는 노력과 미친 듯한 몰두 속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조선시대 유명한 서예가 중에 최흥효(崔興孝)란 사람이 있었다. 그가 젊어서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 문제를 받고서 답안지를 쓰고 있었다. 쓰다 보니 그 중에 한 글자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와 꼭 같게 써졌다. 평소에는 수 백 번씩 연습해도 잘 써지지 않던 어려운 글자였다. 그런데 이번에 쓴 것은 오히려 왕희지보다 더 잘 쓴 것 같았다. (왕희지의 글씨나 최흥효의 글씨를 삽입할 것.)
그는 그만 자기 글씨에 자기가 도취되고 말았다. 하루 종일 그 글자만 바라보던 그는, 차마 아까워서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우연히 같게 써진 한 글자의 글씨 앞에서 그는 지금 자기가 과거 시험을 보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해서 그는 뒷날 과연 이름난 서예가가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징(李澄)이란 화가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집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천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해서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던 이징은 몰래 집 다락에 숨어서 그림을 그렸다. 집에서는 갑자기 아이가 없어졌기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온 동네를 다 찾아 다녔지만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사흘 만에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년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너무도 화가 나서 볼기를 때렸다. 소년은 매를 맞고 울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소년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또 조선시대 왕실의 친척이었던 학산수(鶴山守)란 이가 있었다. 그는 노래를 잘 부르는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다. 산에 들어가 노래 공부를 할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 앞에 놓았다. 노래 한 곡을 연습하고 나면 모래 한 알을 주어 신발에 담았다. 또 한 곡이 끝나면 다시 모래 한 알을 담았다. 그렇게 해서 모래가 신발에 가득 차면 그제야 산에서 내려왔다.
한번은 황해도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적 떼를 만났다. 도적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귀한 신분인줄 알아채고, 가진 것을 다 빼앗은 후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죽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슬퍼져서 나무에 꽁꽁 묶인 채로 바람결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들은 도적들은 모두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노래가 끝나자 도적들은 그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 그를 풀어 주고 빼앗았던 물건도 다 돌려 주었다.
조선 후기에 이삼만(李三晩)이라는 서예가는 초서(草書)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종이를 구하기 힘들 때였기 때문에 그는 흰 베를 빨아서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흰 베가 온통 까맣게 되면 이것을 빨아서 다시 썼다. 아무리 아파도 하루에 천 자씩은 꼭 썼다. 처음에 그는 부자였는데, 글씨만 쓰고 다른 일은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주 가난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글씨만 썼다.
그는 글씨를 배우려는 젊은이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네가 글씨를 잘 쓰려면 적어도 벼루 세 개쯤은 먹을 갈아 구멍을 내어야 할 걸세.”
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말이 있다. 그 단단한 벼루가 먹을 갈아서 구멍이 나도록 그는 글씨를 쓰고 또 썼다. 그래서 마침내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다.
우연히 같게 써진 글자 하나 때문에 과거시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던 최흥효나 매를 맞으면서도 눈물을 찍어 새 그림을 그렸던 이징, 그리고 노래 한 곡을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을 담아 넣으며 노래 공부를 했던 학산수, 여러 개의 벼루를 구멍 내 가면서 글씨 연습을 했던 이삼만, 이 네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미쳤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은 이런 끊임없는 노력과 미친 듯한 몰두 속에서 이루어진다.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시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시인은 마음에 드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한다.
고려 때 강일용(康日用)이란 시인이 있었다. 그는 깃이 흰 백로(白鷺)를 유난히 사랑했다. 백로를 가지고 정말 훌륭한 시를 한 수 짓고 싶었다. 그래서 비만 오면 짧은 도롱이 옷을 걸쳐 입고 황소를 타고 개성 시내를 벗어나 천수사(天水寺)란 절 옆의 시냇가로 갔다. 황소 등에 올라 앉아 비를 쫄딱 맞으며 백로를 구경하곤 했다. (백로 그림 하나 삽입할 것.)
비가 올 때마다 나가서 백로를 관찰하였지만, 아름다운 시상(詩想)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백일 만에 갑자기 한 구절을 얻었다. 그 싯귀는 이러했다.
푸른 산 허리를 날며 가르네.
飛割碧山腰
그는 어느 날 시내를 박차고 날아 오른 백로가 유유히 산 허리를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비가 와서 푸른 산 허리에는 흰 안개가 자옥히 깔려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흰 안개가 흰 백로가 훨훨 날아가면서 푸른 산 허리에 흰 줄을 그어 놓은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꼭 국군의 날 행사 때 공군 아저씨들의 비행기가 하늘 위에 흰 줄을 긋고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 구절을 얻고서 그는 너무도 기뻐서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오늘에야 옛 사람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었다. 훗날 이 구절을 이어 시를 완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한 구절이 너무도 마음에 들고, 또 이 구절을 얻은 것이 너무 기뻤던 나머지, 그는 다른 구절을 채워 한 수의 시를 완성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위대한 예술가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이러한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를 완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위대한 예술은 탄생한다. 옛 시인들은 한 편의 마음에 드는 시를 짓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당나라 때 시인 맹교(孟郊)는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라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노래 한 적이 있다.
산속 여관에 앉아서 새벽을 기다리며
기나긴 밤 시 짓느라 정신을 괴롭혔다.
山館坐待曉 夜長吟役神
여행길을 떠났다가 여관에서 밤새 시를 지었다. 한숨도 못 자고 꼬박 날을 새운 뒤 멀리 먼동이 터 오는 것을 보고 반가워서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또 그는,
살아서는 한가한 날 결코 없으리
죽어야만 시를 짓지 않을테니까.
生應無暇日 死是不吟詩
라고 하여, 죽기 전에는 결코 시 짓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나라 때 노연양(盧延讓)이란 시인도 아주 재미난 시를 남겼다.
한 글자를 꼭 맞게 읊조리려고
몇 개의 수염을 배배 꼬아 끊었던가.
吟安一箇字 撚斷幾莖髭
시를 지으려고 하는데 알맞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글자가 좋을까 아니면 저 글자가 좋을까? 이 둘 보다 더 나은 글자는 없을까 하며 고민하느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염을 배배 꼬다가 수염이 도대체 몇 개나 끊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생각에 골똘히 빠져서 손가락 끝에 수염 하나를 감아 쥐고 배배 꼬는 그 모습이 눈에 그릴 듯이 선하게 떠오른다. 두목(杜牧)이란 시인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시를 짓는 괴로움을 알고 싶은가?
가슴 속에 가을 서리가 서린 듯하네.
欲識吟詩苦 秋霜若在心
좋은 시를 쓰기 위해 겪어야 할 괴로움을 생각하면 마치 차가운 서리를 가슴 속에 담아 둔 것 같다는 것이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스스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들볶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품 하나에도 한 예술가의 일생이 담겨 있다. 시인은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남기기 위해 어떤 괴로움도 다 참아 내며 견딘다. 화가는 멋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음악가는 아름다운 곡을 작곡하려고 힘든 줄도 모르고 밤을 새우며 작업에 몰두한다.
위대한 예술은 이런 자기를 잊는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든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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