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칠하면 萬年가는 신비의 金빛 천연도료
신비의 금빛 천연도료로 알려진 황칠(黃漆). 은은한 황금색에 내열·내수·내구성이 강한 황칠은 고대부터
공예품의 표면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문헌에는 황칠을 예찬한 기록이 많다.‘삼국사기’에 보면 “백제가 금빛
광채의 갑옷을 고구려에 공물로 보냈다.”고 적혀 있으며 신라는 칠전(漆典)이라는 관청을 두고 국가가 칠
재료 공급을 조절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중국 조공으로 마구잡이 벌목
황칠은 두릅나무과 상록 활엽수인 토종 황칠나무에서 채취한 액체를 정제해 만든다.“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니 잘 익은 치자물감 어찌 이와 견주리요.”
다산 정약용의 ‘황칠’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다산이 시로 지을 만큼 칭송한 황칠은 순금을 입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황금빛이다. 그 빼어남 탓에,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조공 요구와 조정 공납을 감당하느라
마구잡이 벌목으로 이어졌다. 이후 토종 황칠나무를 볼 수 없게 되면서 전통 칠공예로서 황칠도 사라져갔다.
최근 남서해안 및 도서 지역에 황칠나무가 자생하는 것이 발견되면서 오랜 세월 맥이 끊긴 황칠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지난 8일 토종 황칠나무 수액의 채취 과정을 보고자 국립산림과학원 특용수과 김세현(49)
박사와 함께 제주도 서귀포시 상효동의 자생군락지를 찾았다.
●제주도에 70% 자생… 15년생부터 채취
한반도의 황칠나무 중 70%가 자생한다는 제주도. 도민들 대부분이 황칠나무를 잘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벌채를 해 지금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계곡에만 남아 있다. 그나마 15년 이상 자라야 채취가 가능해
대량생산이 어렵다고 한다.
김 박사는 1991년부터 5년간 전통 황칠의 복원 및 산업화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우량개체를 골라 유전자 보존을 하는 작업과 수액 채취 방법을 개선하는 데 실적을 쌓고 있다. 김 박사는
“잎에는 다량의 사포닌 성분이 있고 꽃에는 꿀이 있으며 원적외선 방사 에너지가 방출된다.”며 황칠나무의
용도가 다양함을 강조한다.
●일제 강점기땐 잎만 따도 잡아가
구영국(48·황칠공예 명인 127호)씨는 200년간 끊어진 전통 황칠공예의 맥을 이으려는 장인(匠人)이다.
“옻칠은 잘 알면서도 우리의 전통 황칠을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그는 경기도 분당에 있는 작업실에서
다양한 소재에 황칠을 시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 사람이 황칠나무 잎만 따도 잡아간다고 했어요.” 당시 일본으로 한국의 황칠이 유출됐
으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일본은 이미 황칠의 비밀을 풀었지만 정작 국내에는 확인된 황칠 유물이 없다.”
고 안타까워했다.
“옻칠이 천년이면 황칠은 만년이라고 했어요.”
보존성이 뛰어난 황칠의 특성상 국내 어딘가에는 유물이 남아 있으리라고 구씨는 확신한다. 박물관 수장고를
뒤져서라도 황칠 유물을 찾는 것이 그의 바람이고 숙제다. 그 숙제를 푸는 날 우리는 빛나는 전통문화 하나를
되찾으리라.
황칠(黃漆)나무
황칠(黃漆)나무
Dendro Panax. Morbifera LEV
국제학명은 만병통치약을 뜻하는 덴드로 파낙스(Dendro-panax)이다. 드릅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교목으로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남부해안 지역과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한국의 고유수종이다.
겨울에는 낙엽이 지지않는 늘 푸른 넓은 잎을 가진 큰 나무로 키가 15m에 이른다. 6월에 흰색의 꽃을 피고 타원형의 열매는 30~40여개씩 모여 달려 있고 10월에 검은빛으로 익는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처음에는 2~5개로 갈라지나 나이가 먹으면 긴 타원형에 톱니가 없는 보통 모양의 잎으로 변한다. 나무껍질은 갈라지지 않아 매끄럽고 어린가지는 초록이며 윤기가 난다.
수피에서 채취되는 황칠수액은 찬란한 금색을 띌 뿐만 아니라, 수지는 안식향을 함유하여 예로부터 약리효과가 탁월한 신비한 나무로 주목 받아왔다. 황칠은 과거에는 황금빛 천연도료로써 쓰여져 왔으나 최근에는 옛 문헌상의 약리효과 기록을 토대로 한 현대 과학적 연구결과가 발표되어지고 있다. '만병통치' 라는 뜻의 학명이 암시하고 있듯이 황칠의 신약개발로 새로운 치료제로 건강기능식품으로써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일본도 황칠나무가 있으나 조경수 관상수로 사용할 뿐 금칠이 나오지 않는다. `중국의 황칠은 가정(1208~1224)년간 이전에 절멸 되었다.
나무인삼(Dendro-panax Morb Nakai)
'나무인삼' 이라는 학명(Dendro-panax Morbifera Nakai)을 가지고 있는 황칠나무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이다. 황칠은 세계적으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해남,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 생산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독특하고 다양한 우리나라 난대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난대수종이 바로 이 황칠나무이다.
황칠은 이 나무의 껍질에 상처를 내어 채취하는데, 예로부터 그 특유의 황금색과 희소성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으로 수출되었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며 역사적 내용을 살려보면 삼국사기, 해동역사, 임원십육지 등의 문헌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발견해낸 우수한 칠 재료 중에 하나로 기술하고 있다.
황칠은 정신을 안정 시키는 향을 발산하고 도료와 염료, 전자파흡수 등에서 탁월한 특성을 나타내어 앞으로 개발의 소지가 많은 식물이다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데다 은은한 안식향을 풍기기 때문에 대대로 귀하게 쓰였으나 구하기가 힘들고 그 채취나 정제법이 까다롭다. 도료분야에서의 황칠은 투명한 황금색을 자아내면서 목재는 물론 금속에 강한 접착력을 지니면서 내열성 및 방습성이 뛰어나다. 또한, 염료분야에서는 황금빛 천연염색에 모기 등 각종 해층을 퇴치하는 독특한 향을 지닌 의류제품을 상품화 할 수 있다.
그 밖에 황칠 주류 및 음료, 황칠에서 내뿝는 안식향을 이용한 향수, 생약성분을 이용한 신약원료, 신육묘법을 통한 묘목분양 및 전자파 흡수기능을 전자제품에 적용하는 방법 등 황칠의 적용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우리 선조들이 가꾸고 적용한 황칠은 앞으로 여러 분야에 밝은 전망을 가져올 것이며 이를 위해 더욱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황금빛 비색 탁월한 내열, 내구성… 전자파 완전 흡수, 이용 가능한 곳 무궁무진
칭기즈칸 테무진의 갑옷과 천막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데, 이는 ‘황칠’이라는 비기(秘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궁전과 집기류 등 황제의 것이 아니고는 사용치 못했으며 불화살로도 뚫을 수 없는 신비의 칠이라고 전한다.’(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백제의 서남쪽 바다 세 군데 섬에서 황칠이 나는데 수액을 6월에 채취하여 기물에 칠하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 ‘백제로부터 토공(공납)으로 황칠 5되 3홉을 거두었다.’(중국 통전)
‘황칠’(黃漆). 옻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를 한결같이 한반도 서남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라고 적고 있다. 중국 25사와 영파사지(英坡寺誌), 책부원구(冊府元龜) 등 각종 역사책들은 진시황제가 ‘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며, 통일신라 때 해상왕 장보고의 교역상품 중 최상품이 황칠액이었다고 전한다. 심지어 중국의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주역의 서문에도 ‘황칠판 위에서 이 책을 명상하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황칠나무의 국제학명조차도 덴드로-파낙스(Dendro Panax),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지칭하는 인삼나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에만 존재했다던 황칠나무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토록 유명했던 황칠을 우리는 왜 모르고 있는가. 중국의 사서(史書)들은 낯설기만 한 황칠나무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해남에 ‘황칠나무’ 3천 그루 자생
하지만 황칠나무는 이제 전남 해남군 일대와 완도지역에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순금의 비색과 신비한 약효로 ‘사라진 나무’라 칭해졌던 황칠나무가 전남 해남군 서남해 일대에 실존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 그것도 한두 그루가 아닌 수만 그루가 자생하고 있으며, 이 나무에 대한 양묘사업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1000년 동안 숨겨졌던 황칠나무가 그 ‘비밀’의 빗장을 풀고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까지에는 황칠에 ‘미친’ 한 농부의 20여 년의 추적과 집념이 있다.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49)가 그 주인공.
공학도로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던 그는 지난 80년 한학자인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선(詩選)에서 ‘황칠’ 이라는 시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대 아니 보았는가. 궁복(장보고의 호)산 가득한 황금빛 수액을. 그 빛이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을 받길 옻칠 받듯 하는데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니 잘 익은 치자물감 어찌 이와 견주리요. 이 나무의 명성이 천하에 자자해서 박물지에 줄줄이 그 이름 올라 있네….”
이후 그는 중국 문헌은 물론 우리의 사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천금목(千金木)이라 하여 그 진은 안식향(安息香)으로 쓴다’ (임원십육지), ‘황칠의 주산지는 전라도 완도’(해동역사)….
문헌을 바탕으로 10년간 틈틈이 서남해안 섬들과 해남 지역을 헤매던 그는 결국 완도 상황봉과 보길도, 진도 첨찰산, 해남군 두륜산 등 전남 도서지역과 해안 일대 19개 지역에서 황칠나무가 자생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지난 90년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가족과 함께 해남 땅으로 내려와 귀농 생활에 들어간 것.
순금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황금빛 비색과 상상을 초월하는 내열성과 내구성, 벌레를 쫓아내고 정신을 맑게 하는 안식향(安息香), 중풍`-`오십견`-`항암제로도 사용되는 약용 성분 등 각종 문헌들에서 밝혀진 황칠의 역사적 효능들은 그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다산의 황칠시에서 ‘아름드리에 겨우 한 잔’이라고 표현했듯, 문헌상의 채취 방법으로는 도저히 경제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각 지역에 흩어진 자생림이 모두 50년생 안팎의 황칠나무인 것을 알고는 크게 낙담했다. 그 수액을 채취한 결과 극소량인 점을 알게 된 것. 동시에 바로 이 점이 황칠나무의 존재를 우리 역사에서 증발시킨 장본인이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공납으로 해마다 공장에게 옮기는데 관리들 농간을 막을 길이 없다. 지방민이 이 나무를 악목(惡木)이라 여기고서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
다산의 황칠시의 한 부분은 황칠의 희귀함에서 오는 민폐가 얼마나 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 자금성의 용상과 어좌를 비롯한 각종 집기류와 천장, 벽면을 모두 도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황칠액이 필요했겠는가. 병자호란을 거친 후 청나라는 조선의 임금에게까지 황칠 사용을 금지한 뒤, 세계 유일의 황칠 생산지인 전남 해안에 대한 감시와 수탈을 강화한다.
‘수탈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황칠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를 넣어 나무를 말라죽게 하거나 밤에 몰래 도끼로 아예 베어내 버렸다’ (목민심서 ‘산림’편) ‘갑인년 어느날 소금비 내린 뒤로 모조리 말랐다.’ (다산 탐진촌요 제2수) 다산은 황칠나무의 ‘멸종’을 중국 황실의 횡포와 1801년에 내린 소금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다산에서 시작해서, 그에게 절망하고, 다산에서 다시 희망을 얻었습니다.” 정씨는 다산의 시 모음집인 탐진촌요(耽津村謠) 제8수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해 황칠 공납이 없어진 뒤 베어낸 밑둥치에서 새싹이 나고 가지가 뻗었다.’ 1803년에 쓰인 이 시가 해남 유배 당시 쓰인 점에 착안한 그는 해남 지역 산지를 샅샅이 훑었다. 그 당시에 다시 싹이 났다면 대단위 군락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지난 95년 그는 해남 모 지역에서 200년 이상 된 3000여 그루의 황칠나무 군락을 발견한다.
인공조림 성공… 상품개발 박차
이에 고무된 그는 아침재 산막 인근 2000여 평 비닐하우스 11동에 2만5000그루의 황칠나무 묘목을 심어 5년 만에 완전한 성공을 거뒀다. 자라나는 시기를 앞당김으로써 칠액 채취 시기도 10년생 이상에서 5년생으로 앞당겼다. 시험삼아 황칠액을 칠한 전통 태극선 부채를 700만원에, 가구를 6000만원에 내놓았더니 사겠다는 문의전화가 쇄도했지만 팔지 않았다. 조림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팔다보면 황칠이 고갈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황칠나무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자 전남도는 자생 실태의 전면 조사에 나서는 한편, 연구진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황칠 연구를 벌였다.
산림청의 이명수 사무관은 “전남도의 최종 보고서에 의하면 200도를 견뎌내는 내열성과 내구성, 내습성, 빛깔의 우수성을 확인했다”며, “이로써 황칠이 래커나 니스, 옻칠 등 기존 도료와는 상대가 안 되는 초특급 도료임을 증명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번 조사를 통해 안식향의 성분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황칠 속에 든 ‘베타큐버빈’이라는 방향성 정유성분이 머리를 맑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효과를 낸다는 것.
정씨는 이런 연구 성과를 토대로 지난해 6월 ‘파낙스 골드’라는 농업벤처를 설립하고, 황칠을 이용한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황칠 염료, 도료, 향료, 신약, 전자파 흡수제 등 갖가지 종류의 상품이 출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그의 이런 도전과 함께 농협은 이를 전남 지역의 주력상품으로 지정했으며, 서울대 생명공학부 등 국내 굴지의 연구소까지 경제적 효용가치에 대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박사는 “조사 결과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조할 아이템임이 충분한 것으로 판명됐다”며 “이제는 어떻게 경영을 할 것인지의 문제만 남았다”고 단언했다.
“미래에는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전투기의 도장재료로 이용될 것입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벤처농업포럼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에서 충격적인 발언으로 청중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가 근거로 내놓은 목포해양대학교의 실험 자료는 그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전자파 흡수율에 대한 연구 결과 대부분의 도장제가 전자파를 반사시키거나 통과시킨 반면, 황칠은 전자파를 완전히 흡수해 버린 것.
“스텔스 폭격기의 도장사가 일본인인 걸 아십니까? 일본이 일제시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황칠을 훔쳐간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황칠의 비밀을 풀었지만, 일본의 황칠나무에서는 수액이 나오지 않으니 어쩌겠습니까.”
작년에 제작한 기타에 황칠을 입혀 보라고 해서 알아 봤는데 엄청 비싸서 엄두도 못냈습니다. 그런데 그 분 말이
비싸기는 하지만 한 열 사람 정도 어울려서 구입한다면 그리 큰 돈 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했는데 ---
최동수님외에 또 한 열 분 정도 되면 제가 한 번 알아 볼까요? 가격이 정확히 어느정도 들면 되는지 --?
이걸 시중에서 구할수 있는 정보가 혹시 있는지 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