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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오모씨2004.05.16 14:27
우아... 건빵에도 그런 역사가...!!
흥신제과를 검색을 해보니 제과사는 안나오고 이런 기사가 뜨네요~

『원곡 그 천도의 삶』
- 안관성 이사장 회고록
이현희__ 성신여대 명예교수



I


본서 『원곡 그 천도의 삶』은 2대에 걸쳐 동학·천도교를 믿으며 신앙적 차원에서 애국애족한 선부장 안찬복(安贊福) 애국지사와 구십 평생을 교육과 종교에 몰신한 부산예술대학 설립자 원곡 안관성(圓谷 安寬成) 이사장의 회고록이다.
개인 회고록 차원의 500여 쪽 묶음이지만 이를 읽다보면 그 속에는 넘치는 용기와 지혜, 인내와 자긍심, 모험과 개척정신, 자신과 집념이 충만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의 충직하고도 은혜로운 지성의 절규는 곧 동학·천도교의 90년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며칠을 지새면서 단숨에 다 읽었다. 때로는 수운 선생, 어떤 대목에서는 해월 선생과 의암 선생이 재현하여 민족종교 동학·천도교의 부활을 약속하는 듯, 시종 구국의 기도소리로 민족지사의 미래설계적 국가전략을 그림 그리는 듯했다.
발간사와 축시(김학광)를 선두로 「I. 나의 꿈과 천도의 삶」에서는 청소년시절 그 고난의 추억, 아버지의 순도순국, 한국전쟁과 피난생활, 국산 건빵의 원조 흥산제과의 국산 건빵, 천도는 나의 삶, 육영사업과 나의 꿈 등 6개장으로 나누어 구십 평생을 눈물겹게 회고하여 옷깃을 여미고 경건히 읽게 하였다. 「II. 천도교와 학교법인 원곡학원」에서는 천도교와 원곡 선생, 학교법인 원곡학원의 2개장, 「III, 원곡선생의 기업경영과 사회활동」에서는 기업경영과 사회활동 기사를 찾아서 남기고 싶은 말씀들의 3개장, 「IV. 원곡 그 천도의 삶」에서는 24명의 지인이 본 선생의 모습을 그렸다. 자제의 인사말과 선생의 연보가 곁들여 있어 짜임새면이나 체제상 매우 명쾌하고 질서 있게 잘 정리되어 호감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원곡 선생의 90 평생 업적이 이 정도로 마무리될 수 없다고 생각되니 아쉬움이 앞선다. 겸손 겸양의 미덕은 당신의 큰 업적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선비 집안의 내력으로 알고 있다. 그저 눌러 참으면서 장점을 내보이려 하지 않음에서 그런 생각이 앞선다.


II


원곡 선생(1915, 안주 용화면 출생)은 장남으로 태어나 선부장(안찬복 공)의 엄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는 3·1운동 때 선친이 선두에 섰다가 체포되어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신 공로가 인정되어 건국공로훈장 애족장을 받은 애국지사 가족이며 동학·천도교의 계대교인으로 평생을 천도로 살아 오신 분이다. 행간마다 그의 동학·천도교 사상이 넘치고 의욕으로 포덕의 열기를 더해 주고 있다. 그는 10대 때 일제침략을 몸소 체험하면서 신발공장이나 고무신가게 생선장사 등으로 어려운 생계를 이어 나가면서도 신앙으로 버티며 꿋꿋하게 사회봉사와 명랑한 생활을 해왔다. 신앙인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의 기쁨일 것이다. 그의 처세훈은 의타심을 버리고 내 것을 소중히 여기자는 것과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개벽꾼이 되자는 것이다. 그 방법은 성경신(誠敬信)을 체행(體行)함으로써 나라의 주인공이 되자는 결의였다. 그 목표는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대 때 자동차 정비기술을 익히고 운전면허를 취득하였으니 이후 그의 인생항로에 큰 변화가 일게 되는 시초가 된다. 또 이때 건빵을 맛보게 됨으로써 뒷날 흥산제과를 설립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다. 그의 애국의지에 대한 신념은 선부장 못지 않아 일제에 강제 징집되어 가는 한국 청년들에게 동학사상을 통해 반일 애국의식을 고취하다가 몇 개월의 구금형도 받았다고 연보에서 적고 있다. 그가 30대 때다. 8·15광복을 얼마 남기지 않고 선부장이 일제의 고문후유증으로 옥중 순국순도하여 충격을 받게 된다.
원곡 선생은 1950년 6.25전쟁 때 단신으로 월남하여 부산을 거점으로 사업을 해 끝내 성공한다. 그것이 흥산제과 공장이었고, 그 이익으로 동천고교와 부산문화예술대학을 설립하여 신앙을 통한 육영사업을 해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원곡 선생은 당신의 명문 사립고교를 통해 인재를 육성하였고, 대학생까지 사회에 내보내 유위한 국가의 동량으로 뒷받침해 준 것이다. 여기에는 모두 동학·천도교사상이 뒷받침된 것이다. 미션계 학교에 채플이 있듯이 원곡 선생의 이들 교육기관에서는 종학교육을 우선적으로 하여 인내천, 보국안민, 광제창생, 시천주의 사상을 철저하게 익혀야 졸업이 가능했다고 한다. 구십평생을 종교교육에 매진한 결실이 아닐까 한다.


이 회고록에는 개인적인 역사보다

동학·천도교의 민족종교사가 더 무거운 과제로 충만되어 있어

이 시대에 메시지로 남길 종교지도서이기도 하다.



III


공익사업을 위하는 일에는 번 돈을 환원하는 미덕을 보이고 있다. 사생활은 매우 검소 질박하지만 나라와 기관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헌신하는 모습에서 원곡 선생의 애국의식과 인간미 넘치는 참신앙인의 경건한 삶을 만인이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3세 때 천도교인이 된 그였으니 거의 1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천도교인으로 수운 선생의 가르침 속에서 살고 있는 모범생이기도 하다. 천도교의 『한국사상』이나 동학학회의 『동학학보』에도 남다른 정성을 쏟아 붓고 있는 원곡 선생은 그의 제자 학생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는 인내천사상의 실천적 인물이다. 종교적으로 큰 위치에 올라 있는 그는 이제 민족 천도교를 기독교나 불교 등 기성종교보다 더 번창하게 키워 가야할 큰 사명을 안고 있다. 크고 작은 10여 개의 상훈은 오히려 겸양의 덕으로 사양한 것이 아닐까 한다. 종교인은 성직자라고 본다. 세속적인 상훈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당연한 일을 해 낸 목사, 장로, 신부, 수녀들이 큰 상에 욕심을 내 빈축을 사고 있음도 참고할 일이다.
원곡 선생의 회고록에 보내는 축하의 인사는 다소 친화성 메시지가 많으나 그 중에는 흥암(興菴, 그의 도호) 신앙에 접근하고 정곡을 찌르는 충고도 적지 않음에서 이 책은 매우 객관성을 유지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흥암도 인간이기에 다소의 단점 결점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은 선후배가 기탄없이 지적해 주고 그 방법도 제시함이 그를 위한 덕담이 될 것이다. 그 역시 관후한 대인의 풍모가 있어 이를 긴장하여 듣지 않고 액면대로 받아 취사선택하는 여유와 아량이 있음을 안다.
나는 그를 인간미 넘치는 만년청년이라고 하였다. 그 말 속에는 청년다운 기개·도량·의욕·애국심이 곁들여야 하며 동학·천도교를 흥왕케 하는 후배들을 격려 고무시키자는 신앙 발전의 희망도 함께 담고 있음을 알아야 될 것이다.
흥암 선생의 신앙인으로서의 성공적인 앞길은 더욱 광명과 희망과 의욕으로 꽉 차 만년청년의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이 회고록에는 개인적인 역사보다 동학·천도교의 민족종교사가 더 무거운 과제로 충만되어 있어 이 시대에 메시지로 남길 종교지도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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