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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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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수2011.08.29 19:53
※ 본문의 계속입니다


6) 호세 라미레즈 3세(1922∼1995) :

Jose Ramirez 3세야말로 라미레즈 왕국을 굳건하게 건설한 장본인이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3살 때 아버지를 따라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18세인 1949년부터 가업인 기타제작에 합류한다.
아버지는 다른 도제들과 마찬가지로 가차 없이 제작을 배우도록 하였고, 엄격하게
기준 디자인대로만 제작하도록 감독하였다.


그는 1957년 라미레즈 2세의 사망 후 가업을 계승하게 된다.

기타의 성능개발이 이미 완성된 것도 아니고, 오케스트라나 다른 악기 앞에서는
맥도 못추는 처지에 기타의 형태가 그대로 머무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미레즈 3세는 비록 기타음향에 관한 충분한 자료는 없지만 관련분야에 지식이
있는 과학자들과 함께 발현음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한다.

- 그는 전면판의 대체 재료로 레드시더(Thuja Plicata)를 선정하였다.
- 여러 가지 바니쉬의 진동전달과 Crystallization을 비교 분석한다.
- 타현 및 공명통으로서의 측판의 기능과 효율.
- 맑은 음질의 발현에 적합한 현장과 공명통 크기의 상관관계.
- 사용할 목재의 건조를 위한 재래식 방법 외에 자외선의 사용 등.


아직도 갈 길은 멀었지만,
그는 세고비아가 1937년 이래 독일제 기타만 연주하는데 무척 속상해 하였다.
세고비아는 그동안 몇 번 악기를 가져갔으나 콘서트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드디어 1960년에 세고비아가 그의 악기로 콘서트를 하는 날이 찾아왔다.
그 때부터 세고비아와 40년에 걸친 오랜 교분이 시작된다.

세고비아가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라미레즈 기타는 거의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 라미레즈3세의 수상내용 :

- 1962년 시카고에서 기타협회주최 전시회에서 금메달 수상.
- 마드리드 상공회의소로부터 동메달(전 기업을 대상으로 하므로 큰 상임).
- 1968년 로마의 Centro Culturale Chitarra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감.
- 1972년 마드리드에서 명장에 선정되어 금상 수상.
- 1983년 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명예 작곡가상 수상
- 1986년 인간문화재로 지명됨
- 1987년 마드리드상공회의소로부터 왕조100주년기념 포상.
- 1987년 빠리의 문화교육성으로부터 금제 소리굽쇠 수상.

- 무엇보다도 소중한 상은 세고비아가 타계하기 수개월 전에 라미레즈 3세에
관해서 쓴 짧은 헌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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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FEW WORD ABOUT JOSE RAMIREZ :

호세 라미레즈 3세는 훌륭한 기타 제작가일뿐만 아니라 기타의 발전사에
기여한 지칠 줄 모르는 연구가이다.
그는 찰현 및 탄현악기의 신비한 진동파와 음질을 연구하였다.
그는 아주 소수의 현악기제작가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 그 이상의 방대한
지식을 소유하였다.
그는 그러한 지식을 끊임없이 실질적인 작업에 적용하므로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라미레즈는 그를 돕는 탁월한 제작기술자들의 협력을 받아 창조적인 솜씨로
기타제작의 지도와 감독, 개선과 수정 작업을 하므로서 날이 갈수록 성능을
향상시켜 왔다.

나는, 지금까지 20대가 넘는 그의 기타로 녹음실 뿐아니라 청중이 3,000명,
4,000명, 때로는 5,000명도 넘는 콘서트 공연장에서 라미레즈가 흘린 땀의
열매를, 혼자 맛보았다.

일례로, 미국 디트로이트 근교의 Ann Arbour 공연장에서는 청중 5,000명이
넘는데도 마이크를 사용치 않고 연주하였는데, 그 이유는 예술보다 상업적인
면에 비중을 두는 이즘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확성기를 반기지 않는 까닭이다.

전 생애를 걸고 목표의 실현을 추구하는 강한 집념으로, 호세 라미레즈 3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색으로 울려퍼지는 기타를 만들어 낸 것이다』

Andrez Segovia
Maraquis of Salobr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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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는 연주 여행에 기타를 한 대만 갖고 다니는데, 너무나 잦은 연주를
하다보면 악기가 고장이 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라미레즈는 이에 대비해서 늘 기타를 포장해두었다가 보내주곤 하였다.

한번은 미국에서 연주 중에 악기가 고장났는데 보내줄 시간이 모자랐다.
하는 수없이 가까이 있던 어거스틴 기타줄 회사(듀퐁) 사장부인이 소장하고있던
라미레즈 2세 악기를 헌정했다고 한다.



그는 세고비아가 지적한 바와 같이 문제의 여린 음정과 울프노트를 해결하고자
노력을 경주하였다.

거트현 시대가 저물며 1940∼1950년대에는 나일론 현이 범용화 되기 시작한다.
나일론 현의 효능을 극대화하여 오늘날과 같이 힘차고 아름다운 소리를 발현할 수
있도록 이에 적합하게 악기를 성능을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1950년대에 들어서서 그는 연구실에서 실험한 결과 얇은 측판으로는 발현효과가
미진함을 발견하였다
먼저 측판의 변형을 방지하므로서 내부응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안쪽에 라이닝을
한 이중측판을 고안하였다.

몸통내 공기의 진동을 더욱 활력있게 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664mm로 늘리는게
최선임을 깨달았다.
이는 3프렛에서 1.5mm정도 프렛간격이 커지는 만큼 운지의 어려움은 있겠으나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는 판단이 섰다.

라미레즈의 영향으로 60∼70년대에는 전세계에 현장 664mm 악기가 유행하게된다.
심지어 일반현장인 650mm의 기타는 잘 안팔릴 정도 였다.

네크도 습기에 의한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안쪽에 흑단 심을 심었다.
네크의 두께와 폭은 누가 뭐래도 세고비아의 힘 있고 큰 손을 기준으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악기에 입히던 쉘락이 습기로 인한 변형에 취약함을 고려하면, 오히려
두터운 락커가 전면판의 횡적진동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락커 마감을 개발한다.

[De Camara Model]의 경우, 측판의 중간을 따라서 얇은 날개를 부착하므로서
울프 노트를 방지하도록 개발된 것이다.



※ 아래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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