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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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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수2011.08.25 19:47
※ 기타의 명가 라미레즈의 계속입니다.


4) 마뉴엘 라미레즈 (1864∼1916) : (1869∼1920)설은 오류임.

호세 라미레즈가의 직계는 아니지만 여기서 빼놓을 수 없다.


〇 마뉴엘 라미레즈의 일화 :

토레스의 사후 얼마 안되어서 마뉴엘 라미레즈에게 우연히 토레스 기타의 라벨
2장이 입수되었다.
마뉴엘 라미레즈는 최선을 다하여 토레스기타의 짝퉁 2대를 만들었다.
기타의 안쪽에는 먼저 자신의 라벨을 붙인 다음, 그 위에다 토레스의 라벨을 살짝
붙여 두었다.

마뉴엘은 토레스의 악기 2대를 새로 구하였으니 시연해보라고 연주가들을 초대
하였다.
2 악기를 연주해본 연주가들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우수한 악기라고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마뉴엘은 나중에 뒷말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 2악기의 성능에 대한 의견을
자세히 수렴하고 다짐을 받았다.

마뉴엘이 2 기타의 안쪽에 붙어있던 토레스의 라벨을 뜯어내니, 마뉴엘의 라벨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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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el Ramirez는 Jose Ramirez 1세의 친동생으로 일찌감치 형의 문하에서
기타제작을 배웠는데, 그중에서 가장 탁월한 재능이 돋보였다고 한다.
6살 아래였으나 제1차세계대전 중 유럽을 휩쓴 독감으로 52세의 젊은 나이로
형보다 7년이나 먼저 사망한다.


마뉴엘은 1891년에 빠리로 진출코자 하여, 형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프랑스의 내란 등으로 인하여 취소하고 같은 마드리드에서 공방을 개설한다.

타고난 창의력과 추진력의 소유자인 마뉴엘 라미레즈가 독립하자, 그는 새로운
기준에 의한 디자인으로 플라멩코 기타를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그의 이상적인 모델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채 플라멩코 기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뉴엘은 클래식 기타의 연구개발에도 정열을 쏟아 붓는다.
드디어, 마뉴엘은 1893년 국제적 악기품평회인 미국의 시카고 악기전시회에서
메달을 딴다.

마뉴엘은 기타의 연구와 제작에만 매달리지 않고 바이올린의 수리와 제작에도
깊은 관심을 갖는다.
- 그는 마드리드의 Royal Conservatory로부터 현악기 제작가로 인증 받는다.
- 나아가, Madrid Royal Chapel로부터 스트라디바리 4중주용 현악기 수리의
책임자로 임명 받기도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는 Santos Hernadez, Domingo Esteso, Modesto Borreuero 등의
명장을 배출하였다.
당시 잘 알려진 연주가 Gimenez Manjon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던 11현 기타를
세고비아에게 헌정한 일화는 이미 전술한바 있고, 줄리안 브림도 마뉴엘의 악기로
연주하였다.

마뉴엘은 자식이 없으므로 그의 사후에는 실제 제작자의 이니셜을 악기에 명기하는
조건으로 [VIUDA DE MANUEL RAMIREZ-마뉴엘의 부인]이라는 기타를 제작
하기도 하였다.


※ 아래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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