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의 한국인... June 6, 1944 (후편)
두손을 머리 뒤로 올린채 참호속에서 나와야만 했다.
막 전투를 치룬듯, 그들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몹시 흥분되어 보였다.
닭벼슬 처럼 머리의 가운데 부분만 남기고 모조리 삭발한 병사는,
얼룩덜룩 위장된 얼굴에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듯한 태세였다.
방금전 엄청난 폭발에 온몸을 두드려 맞은듯 서있는것 조차도 힘들었지만,
이대로 주저 앉아 있다간 그들이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를 쓰고 걸었다.
"살려면 움직여야 해..."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어서 조금 걷고 나니 곧 견딜만했다.
30분 정도를 걸어 미군의 집결지에 다다르자,
같은 처지가 되버린 한 무리의 아군-독일군들이 보였다.
소속부대를 확인하기 위한 줄에 끼어 반대편 쪽을 바라 보니,
이미 확인이 끝난 병사들이 대오를 이루고 서있었다.
포로가 된것이 못내 분하다는 표정의 장교.
아무 표정이 없는 어린 병사.
전투에 지쳐버린 주름 잡힌 얼굴의 노병.
...들이 보였지만...
대부분은 이제 전쟁은 다 끝났다는듯,
밝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벌써 차례가 되었다.
장교가 수북히 쌓인 서류에 무언가를 기입하며 물어보았다.
독일어인 것은 알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실 아는 말이라곤...
예, 아니오, 그리고 몇몇 무기 이름들뿐이었다.
분대별로 독일어를 잘 하는 동료가 있어 굳이 배울 필요는 없었고,
정말 급한 경우라면 손짓, 발짓으로도 의사는 전달 되었다.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다 궁여지책으로 군번표를 풀어서 보여주니,
장교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피곤함이 역력한 얼굴의 그는 다소 놀란듯, 다시 말을 걸어 보았지만...
나는 여전히 대답할 수 없었고 멍한 표정으로 군번표만 들이댔다.
마구 다그치는 듯한 장교의 행동에 순간 몹시 긴장했다.
그는 주위의 다른 장교를 불러 심각한듯 한동안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혹시 잘못된건 아닐까 내심 불안해 하며 애처로운 얼굴을 했지만...
손가락으로 트럭이 있는쪽을 가리키며 이동하라는 장교의 얼굴을 보니,
이내 안심이 되었다.
일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하자마자 전투를 치뤘다.
최고라던 황군은 소련군 전차와 장갑차에 고깃덩이처럼 도륙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얼마 후 소련군이 되어야 했고,
강철 같은 독일군의 기관총에 다시 가랑잎 처럼 쓰러져 갔다.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을때, 우리들은 강제로 독일군에 배속되어
이곳 이름 모를 해안 지방에 지원 부대로 보내졌다.
소련군 포로 중에는 중앙 아시아인과 몽고인들이 섞여 있었는데,
키작고 광대뼈가 튀어 나온 나같은 아시아인들은 혐오 대상이었다.
아까 죽어버린 "귄트" 하사관은 특히 심한 히스테리 증세를 보였다.
고된 훈련과 거의 노예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지만,
포로수용소에서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비참하게 죽는것에 비하면
하루 세끼를 거르지 않고 먹을수 있는것만으로도 천국과 같았다.
.
.
트럭에 올라 털썩 주저 앉았다.
"아... 정말 살았구나..."
오늘 아침에 그렇게 비오듯 쏟아지는 포탄세례는 난생 처음이었다.
게다가 어젯밤엔 연합군들이 하늘에서 새까맣게 떨어졌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젠 더이상 살아 남을것 같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운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잘만하면 고향에도 갈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황해도 연백의 드넓은 땅이 펼쳐진 내 고향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때가 꼬질꼬질 끼어있는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고 등을 기대니,
시동소리와 함께 덜컹 거리며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털털 거리며 달리는 트럭 뒤에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 사이로,
길가에 깊게 패인 포탄 구덩이에서 피어 오르는 검은 연기가...
잿빛하늘을...
더욱 흐리게 했다.
.
.
"Winters on subway" from "Band of Broders" - Michael Kamen
-
차차님 감사 드려요... (__)
근데... 왠지...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
벌써 크리스마스가 임박했네요.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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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병사가 무사히 귀환하길........